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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서명下
 
진민 수필가   기사입력  2018/06/20 [18:24]

 

▲ 진민 수필가    

요즘 들어 초점이 없는 눈빛, 더 이상 반가워하지도 않으시고 계속 잠으로 병상을 지키시는 어머님의 얼굴만 마냥 쳐다보다 오게 된다. 말 그대로 효자인 남편은 효도는 셀프니까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 했지만 직접 모시지도 못하는 처지라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늘 동행하고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님과 눈을 더 마주치기 위해 노력한다. 여전히 어머님께서는 편찮으신 곳도 별반 없으시고 간간이 정신을 놓는 것과 기력이 쇠잔해지셨을 뿐이기에 시늉뿐인, 이토록 애끓는 효도나마 하게 된 걸 감사할 따름이다. 이 곳 노인요양병원에 거주하시는(사실 딱히 치료라는 개념이 무색하긴 하다) 어르신들은 상태가 악화되면 4층 집중치료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으시다가 그마저 위급해지면 상급병원으로 가신다고 한다. 다행히 어머님께서 한 번도 집중치료실을 이용하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일찍 친정엄마를 여윈 나는 둘째며느리이지만 유난히 예뻐하고 믿어주신 덕분에 나로서는 남다른 시어머님이라서 늘 마음이 애틋하다. 가끔 어머님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손을 다시는 만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가 쭈뼛쭈뼛 선다. 시설도 좋고 나름 신경 써서 모시는 곳이긴 해도 자꾸만 불효다 싶어 병원 문턱을 드나들 때마다 남편과 나의 가슴에 휑한 바람이 들어차지만 그럴수록 단 한마디라도 어머님과 더 소통하고 안아드리고 싶을 따름이다. 이런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친구는 98세의 노모께서 경관 식이법도 더 이상 안 되고 중환자실에서 석 달 넘게 온갖 고생 다 하시다 돌아가셨으니 너희 시어머님께서 너무 힘들어 하시게 되면 당신께서 서명하신대로 잘 마음다독이라고 한다. 주변의 걱정 어린 조언을 들을 때마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아직 총기도 대단하시고 심하게 고통을 느끼시고 계신 환자도 아니고 단지 하반신만 움직이지 못하시는 불편함, 뿐이라고 대꾸한다. 그럴 리가 없을 거야, 절대로! 당신의 온전한 뜻을 져버리는 며느리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당신의 생각이 옳다고 그 누가 대신 대답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작년에 남편과 나는`연명치료사전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우리 대代에서 부터는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서로 공감하며 동의해 두었다. 다만 어머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던 뜻과는 상관없이 오래도록 병상 지키는 일 만큼은 우리의 본분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 또 다짐이다. 오래전 당신께서 보여주신 의지야 말로 본연의 깔끔하고 담대하신 성품을 나타내준 하나의 정표이자 지극한 자식 사랑이 넘치는 애정표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삐뚤빼뚤하지만 꼭꼭 마음을 다해 눌러쓴 당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빛은 오늘도 먼 곳을 향해있지만 나는 안다. 어머님의 손마디처럼 굵고 투박한 사랑을. 먼 훗날 이 세상에 하나뿐인 어머니의`숭고한 서명`은 당신께서 칠순 때 주셨던 금반지와 함께 나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한결같은 위안과 사랑을 보내며 명징하게 오래도록 숨 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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