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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우리
 
최영주 수필가   기사입력  2018/06/21 [18:51]
▲ 최영주 수필가    

불덩이가 뒹구는 메마른 땅이 드넓게 펼쳐진 사이로 좁다란 자동차 길 하나 나 있다. 황량하면서도 담대한 자연이다. 굽으며 뻗어나간 길이 가마득하다. 앙뚜는 길가에 바싹 붙어 서 있다. 스승이 일주일간 환자를 돌보고 돈을 벌기 위해 타고 떠난 버스의 뒷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본다.
앙뚜가 한사코 따라나서고 싶은 길이고 9살짜리 제자 앙뚜를 결코 떼놓고 싶지 않은 스승 릭젠의 길이다. 남편이 영화에 집중하고 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텅 빈 영화관에서 단둘이 <다시 태어나도 우리> 영화를 보고 있다. 남편은 역사적이거나 뚜렷한 사건 전개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저 잔잔한 이 영화를 "좋은 영화네" 하며 열심히 보고 있어 안심이 된다. 나는 어제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본 터이다. 자연의 절경 배경과 스승이 천진한 어린아이인 제자를 모시며 돌보는 장면들에 감동되어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오늘은 영화 상영을 밤 1시에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지만 보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앱(application)으로 예매를 해 준 남편이 관객은 나 하나뿐이라고 했다. 아무리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영화관이지만 밤중에 혼자 보는 건 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제도 관람객이 대여섯이었고 오늘도 이토록 관객이 들지 않으면 내일은 영화를 종영해버릴 것 같아 한밤중에 달랑 혼자여도 관람을 불사하기로 했다.


혼자 객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데 상영 시작 1분 전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 남자 혼자? 생각하며 유심히 보니 낯익은 실루엣으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남편이었다. 남편은 좌석이 더 예매되는가 하고 스마트폰을 열어 지켜보고 있었는데 상영 시작 직전까지 관객은 나밖에 없었으므로 함께 있어 주기 위해 표를 끊어 들어왔단다. 가슴이 찡해져 왔다. 유난히 잠이 많은 남편이다. 잠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생리를 갖고 있다. 밤 1시에는 세상없어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다. 그 잠을 물리치고 남편이 왔다. 영화를 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던 남편이,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비장한 각오로 온 것이다. `린포체`는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가의 고승이다. 어느 날 스님 릭젠의 사원을 찾아온 5살짜리 앙뚜 제자가 린포체였다.
릭젠은 앙뚜를 업고 그곳의 제일 큰 사원에 가서 린포체와 린포체를 모시는 스님으로 훌륭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앙뚜가 전생에 있었다는 티베트 캄 사원에서 앙뚜를 모셔가지 않자 사원에서 추방당한다. 노년인 릭젠은 자신의 작고 낡은 오두막 같은 사원에서 어린 앙뚜를 정성껏 보살핀다. 돈이 없어 학교에 갈 앙뚜한테 라면을 끓여 먹이며 마음 저려한다. 사람이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같은 것 같다. 릭젠이 앙뚜한테 밥을 먹이고 옷을 챙겨 입혀 학교에 보내는 걸 보며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날마다 남편의 식탁을 차리고 셔츠를 골라 출근을 시킨다. 앙뚜가 가짜 린포체라고 사람들한테 멸시를 당하면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하며 릭젠은 앙뚜를 가르치고 보호한다. 그와 같이 내가 신장병으로 누워 지내며 골골해도 남편은 외면하지 않고 나를 위하며 나와 더불어 인생길을 걸어왔다. 앙뚜한테 사탕 하나 사줄 여유 없이 한 푼 두 푼 여비를 모아 릭젠은 앙뚜를 고행의 길 같은 머나먼 티베트 캄의 한 사원으로 데려다 주고 둘은 헤어진다. 어쩌면 다시는 못 볼 이별 앞에 노인인 릭젠은 울음을 터뜨리며 떨어지기 싫어 슬피 우는 앙뚜를 끌어안고 말한다. 함께 살면서 행복하고 고마웠다고. 열심히 살아가셔야 한다며 훗날 훌륭한 린포체가 되실 거라고 믿음을 준다. 스승 릭젠은 그 험하고 혹독하게 눈보라치는 눈 산을 되짚어 나와 아득히 걸어간다.
남편은 다시 태어나도 나를 부부로 만나고 싶을까? 나는 릭젠이 앙뚜를 한량없이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못했다. 땅콩을 먹으며 껍질부스러기를 거실바닥에 흘린다고 남편을 타박했다. 양치질하며 화장실 거울에 치약방울을 튀기고 번번이 사용한 변기뚜껑을 덮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곤 했다. 이 한밤 나를 염려해 와 주는 사람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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