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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포도밭 주인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8/06/24 [16:12]
▲ 유서희수필가    

내 고장 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육사의 「청포도」 中-


어렸을 때, 담장 너머 알이 굵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밭을 간절히 갖고 싶었다던 남편은 20층 아파트 높이의 테라스라에 포도나무를 심었다. 몇 해 지나서는 머루나무와 청포도 나무도 심어 초록이 풍성한 `천상의 테라스`에는 6월의 햇살 속에 포도가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다. 처음 포도나무를 심은 지 어느 새 10여년이 되어 간다. 포도나무 줄기도 더욱 굵어져 제법 많은 양의 열매가 열리고 잎도 더욱 크고 튼튼해졌다. 화단에도 여러 식물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꽃을 피웠고 다양한  종류의 화초들이 살다 갔다. 길쭉한 모양의 정원에는 공작단풍을 비롯하여 주목, 철쭉 등이 있고 정원의 중간쯤에는 아담한 빈 공간을 두어 상추와 고추, 토마토를 심어 수확을 재미도 적잖지만 포도나무에서 얻는 풍성함과 행복은 어디에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컸다. 부지런함이 천성인 포도나무 주인은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 애정과 정성으로 포도나무를 가꾸었다. 그 덕분으로 포도 꽃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나는 처음으로 포도 꽃과 눈을 맞추었다. 깨알 같은 꽃송이에서 어떻게 그렇게 굵은 열매가 열릴 수 있는지 직접 눈으로 지켜보았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꽃이 지고 포도 알이 열릴 때가 되면 포도나무 주인은 굵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촘촘히 자라는 새순과 열매를 따 주고 가지치기와 튼튼한 뿌리를 위해 거름 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저만치 뻗어 있는 줄기가 쳐지지 않도록 매일같이 잡아 주어 포도넝쿨의 그림자는 테이블 가까이까지 자리를 잡았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눈 뜨면 가장 먼저 그가 하는 일은 테라스에 올라 가 포도나무와 식물들을 살피는 것이다.  며칠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머루와 섞여 열린 포도가 또 다른 포도나무가 아닌 정원의 중간쯤에 처음 심었던 포도나무에서 열린 것이라고 한다. 화단에서 테라스의 둘레를 휘도는 길이는 꽤 길다. 그 먼 거리까지 가지를 뻗어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감탄사를 연신 내 뱉자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세히 포도나무를 살피고 제멋대로 나아가는 줄기에게 방향을 잡아주며 섬세한 손길과 한결같은 정성을 기울인 결과라며 흥분된 어조로 설명 해 주었다. 20층높이의 열악한 환경과 협소한 공간 속에서도 그렇게 대단한 포도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싶었다. 새삼 그가 대단한 능력자로 보여 `엄지척`을 해 주었다.


작년에는 직접 재배한 청포도를 먹어 보고 싶었던 바램이 이루어졌다. 그 맛이 어찌나 달콤하고 향긋하던지 그동안 먹어본 그 어떤 맛있는 포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첫 해는 아홉 송이가 열리더니 올해는 서른 송이가 열렸다. 그 또한 주인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리라. 청포도가 익으면 나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를 읊조리며 청포도를 따 먹으리. 그러면 먼 데 하늘이 들어 와 알알이 박힐테지. 언젠가 그에게 포도나무를 보면 기분이 어떤지 묻자,
"어렸을 때부터 꿈에 그리던 포도밭은 아니지만 포도나무를 내 손으로 가꾸게 되어서 흐뭇하고 내 손으로 가꾼 포도를 가족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보람이 크지. 그리고 우리아이들이 포도나무 줄기처럼 자신들의 꿈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 굵고 탐스런 포도송이같은 열매를 맺기를 바랄 뿐이지."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포도나무가 주는 행복은 크다.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열매와 꽃을 선사해 주기도 하지만 포도송이만큼 커다란 포도 잎이 주는 풍경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풍요로움을 준다. 그와 나는 식사를 마치면 커피를 들고 으레 테라스로 올라간다. 습관처럼 포도나무를 향해 시선을 두게 된다. 포도나무 그늘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렁주렁 달려 있는 포도를 바라보는 기쁨도 크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긋한 하늘빛과 포도 잎의 초록빛 어울림을 바라보면 가슴 속에서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가히 `천상의 포도밭`이라 이름 붙이게 된다. 그는 오늘도 창 넓은 모자를 쓰고 포도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그의 꿈과 가족을 위하는 사랑으로 얼마나 더 멋진 `천상의 포도밭`을 가꾸어 나갈지 기대가 된다. 포도나무를 만지는 그의 어깨 위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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