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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임일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무역 경제학부 겸임교수   기사입력  2018/06/28 [19:50]

 

▲ 임일태한국해양대학교 국제무역 경제학부 겸임교수   

동창회의 흥이 이어진 저녁 겸 주석이 마련된 동기회, 우리들만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활기가 넘친다. 수업시간에 몰래 나가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선생님께 들켜 정학을 당했던 일, 선생님들의 별명을 지어 부르던 일로 화제를 옮긴다. 윤리를 가르친 선생님의 별명은 `바른생활`이었다. 선생님은 항상 "영어 단어 몇 자, 수학공식 몇 개는 못 외워도 좋으니 꼭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그것이 참된 삶의 길이라고 했다. 동기들은 모두 아직 그 말은 기억하지만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한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살기란 공염불이라고, 딸린 식솔들 챙기기도 벅찬 현실에 그런 말은 사치란다. 늦게 도착한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들어온다. 법원 고위직으로 있는 L과 함께 사업을 하는 친구 등, 동기들 중에서 소위 출세를 했다는 친구 서너 명이 들어온다. 골프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늦었단다. 데면데면하던 주석의 분위기는 모닥불에 기름을 부은 듯 확 피어오른다. "신문에서 승진한 기사를 보았다, 네가 동기라서 자랑스럽다, 바쁠 텐데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다, 내 술 한 잔 받아라, 언제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 모두들 옆자리에 앉지 못해 안달이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럴까 하다가도 선생님이 말하던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기도 하다. 


무르익은 분위기에 살며시 찾아온 것은 Y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나에게만 말하고 조용히 사라지겠단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새벽 2시에 출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면서도 다른 친구들에게는 환경미화원을 하고 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두어 해 전 이사를 하며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앞에 살던 사람이 지하실에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이사를 해버렸다. 대형 쓰레기봉투로 매일 버린다고 해도 한 달은 족히 걸릴 것 같고, 이런 시골에 쓰레기 처리를 대행하는 업자가 있는지 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장날 Y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정오에 퇴근하는 남자, 퇴근길에 시장을 보는 그 친구는 우리 동네 환경미화원이었다. 부잣집 막내아들에다 미남인 Y는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나 또한 무척 부러워했는데 환경미화원이 되어 이곳에서 만나다니. 장터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를 산처럼 쏟아놓고는 우리 집 지하실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여주었다. 많기는 하지만 여러 번 나누어 버리면 된다고 걱정을 말라고 했다. 일주일 중에서 쓰레기가 제일 적게 나오는 토요일이 좋겠다며, 토요일 마다 입구에다 적당히 내어놓으라고 했다. 지하실이 깨끗해진 토요일 오후 점심을 같이 했다. 아무리 고향 친구지만 사례는 해야 할 것 같아 목욕비나 하라면서 봉투를 내밀자 손 사례를 쳤다. 이곳이 그의 담당구역이라 언제 치워도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며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환경미화원이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안정된 직장이고, 봉급도 적지 않다며 직업에 만족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동기회에 가면 친구들에게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식사가 끝나자 Y는 느닷없이 봉투 하나를 아내에게 불쑥 내밀었다. 고향친구가 이곳에 이사를 왔는데 휴지 한 롤도 가져오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온천 무료이용권 다섯 장을 든 봉투를 손에 쥐어주었다. 자신은 일을 마치면 회사에서 목욕을 할 수 있고, 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 온천이용권이 필요가 없다고 했던 말들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Y를 보내고 나서 선생님이 말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L같은 사람인지, Y같은 사람인지 분간은 할 수 없다. 적어도 나 같은 소시민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은 Y같은 사람, 위험하고 어렵고 힘든 일을 적은 보수를 받고도 일을 하는 사람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닐까.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더 많은 사람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바람이었으리라. Y가 떳떳하게 자기의 직업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판검사나 환경미화원이 꼭 같은 대우를 받는 이상적인 사회는 영원한 꿈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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