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이념과 사상으로 잠들어있던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장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즉 고양이 빛깔이 어떻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부유해질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지라는 뜻의 선부론(先富論)과 함께 덩샤오핑의 경제정책을 가장 잘 대변하는 용어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정부가 수출입국을 표방하며 채택한 수출 드라이브정책과 기술입국지원 정책에 힘입어 이 정도까지 국민을 먹여 살리는데 성공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박정희정권의 공과(功過)에 대해서 더 진술할 생각은 없으나 지금의 5060 이후의 세대는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왔기 때문에, 실제 살아 본 사람으로서의 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베이비부머의 첫 세대인 필자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빈한하기 그지 없었다. 원초적 본능인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가 고픈 것` 너머의 것은 무엇이든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그 너머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내 것이 되는 행복한 경험들을 체험케 된다.
조그만 광석라디오를 버리고 스테레오라디오를 가지게 되었다.
청계천에서 전축용 턴테이블을 구입해 라디오에 연결해서 전축 빽판을 올려놓고 처음 들었을 때의 황홀했던 그때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후에 전화기를 들여 놓고, 꿈조차 꿀 수 없었던 TV를 사서 마음대로 드라마나 스포츠를 볼 수 있었으니 그 행복했던 경험들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나?
세상에 우리 집에 냉장고가 있다니! 결혼 프러포즈할 때, `나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평생 차를 굴릴 형편이 안 될 것 같소, 그러나 날 믿고 한번 따라와 주시오` 라고 했던 말은 말짱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빨리 내차를 가질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경제적 풍요감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수치나 지표로 어떻게 그 행복감을 나타낼 수 있겠나?
그러나 가장 아쉬운 것은 경제신장과 함께 민주화가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은 3ㆍ15 의거, 4ㆍ19 혁명, 부마항쟁, 6ㆍ10 항쟁 등을 거쳐 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정점을 찍은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이 땅에는 많은 분들의 희생이 토양이 되고 거름이 되어 민주주의 꽃이 활짝 피었고, 지금은 세계 유수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있다. `생활의 나아짐`과 `민주화를 통한 의식의 진보`를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없었던 시대의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행복과 환희, 희생과 아픔이 재료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져 있다. 참으로 어려웠던 그 시기에 등소평 식 흑묘백묘식 경제개발정책이 우선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토대가 되어 지금과 같이 선진국에 육박하는 경제대국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삶은 항상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나라도 발전을 향해 항상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국정선택의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있게 된다. 대통령의 손에 리트머스 시험지가 들려져 있다.
대통령의 정책선택은 5000만 명 국민 개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나라의 운명까지도 결정되는 것이어서 참으로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역대 대통령들의 아픈 과오가 있었기에 대통령의 선택은 `도덕적 선택`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국민은 깊은 사색과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내리는 대통령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졸속적이고 즉흥적이어서는 안 되고, 어는 특정세력을 위한 선택이어서도 안 된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된 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아직도 `적폐청산`에 매달리고 있는 현 상황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개발주도 정책도 도마 위에 올려지고, 이데올로기 우선의 `만민행복주의`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앞의 정부가 잘못한 정책들은 되돌리고 정상화시키는 것이 맞다. 그러나 과거에 묶여서 미래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 또한 새로운 적폐가 되고 만다. 지금의 정치상황은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대통령의 이미지가 너무 중요해서 국가행위도 대통령의 `선해 보임`이 우선인 듯하다.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는 아무래도 정권 말까지 계속 이어질 태세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다면 이 정부가 5년간 그토록 열심히 해 온 모든 일들이 거꾸로 새로운 적폐가 되어 소모적 정치행위가 반복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