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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작은 여유, 바다
 
김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8/07/23 [20:10]
▲ 김순희수필가    

여름바다는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그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요함 속에 강한 이끌림이 있다. 그래서 여름엔 가끔 바다를 찾는다. 긴 무더위가 한창이다. 사람들의 열기가 한 꺼풀 가신 후의 바다는 잠잠하다. 특히 밤의 정취는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가 어울러 그 멋을 더 자아낸다.

 

그래서 여름바다를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찾는가 보다. 밤바다 멀리서 하얀 파도가 마치 거대한 용의 움직임을 한 것처럼 밀려온다. 소스라치게 놀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바다가 주는 밤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늘 그 자리 그 곳에서 바다는 말이 없다. 그런 고요함을 장난이라도 칠 모양으로 거세게 밀려왔다 가곤 한다. 육지와 조금 떨어진 바다에 낯익은 등대 하나가 우뚝 선 채 말이 없다. 그렇게 홀로 선 등대는 가끔 불빛을 내고 있다. 아마도 등대의 작은 불빛만으로도 충분히 선착장을 떠난 배들은 다시 돌아올 약속을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여름의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모처럼 바닷가에 앉았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시원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는 것이 그저 행복하다. 더위를 잊기 위해 사람들은 초저녁 바다를 찾았다 돌아간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예전, 친구와 함께 바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밤기차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동해에 갔던 기억이 새롭다. 동해 바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굳이 왜 그 먼 곳까지 가야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덜커덩거리는 기차를 타고 밤새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그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그랬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말이다. 아무튼 바다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서 좋고, 그 친구 따라 함께 달렸던 기차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나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것 하나 하나가 그냥 기억되고, 추억으로 남는다.


동해 일출을 보러 가다 얼떨결에 들른 태백의 어느 해변, 일출은커녕 오일장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그때. 차표를 사고 겨우 남은 돈으로 친구와 아이스크림 하나 사 나눠 먹으면서도 마냥 즐거워했던 기억. 그 기억 너머 난 새로운 모습으로 여름 바닷가에 앉아 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바다를 더 강렬하게 만드는 것 같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더 강해질 때면 어둠은 바다를 더욱 고요 속으로 만들고, 가끔 들려오던 사람들의 소리도 옅어진다. 고요함은 차츰 파도 소리로 거세다. 그런 여름 밤 바다 속에서 나 역시 아련한 추억과 함께 더위를 잊고 또 다른 내일을 생각해본다. 그런 시간이 좋다. 이제는 웅장함과 화려함보다는 소리 없이 무미건조함이 오히려 더 좋다.

 

그래서 세월을 느끼는 것인가 싶다. 저녁이 되면서 인적이 드물고, 밤바다의 정취에 아니면 더위를 잊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왕래만 있을 뿐이다. 울산의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동해바다와 절경에 나로 모르게 함성을 지른다.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바다가 주는 말 못할 뭉클함이 이렇게도 벅차오르는 것인지 말이다.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을 한다.

 

같은 동해 바다이지만 왠지 다를 것만 같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찾아갔던 그때의 여름바다. 그때의 그런 설렘은 없지만 조용히 앉았다 가기만 해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지금의 이 바다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늘 일만 하시던 친정어머니, 유년의 기억으로 어머니는 일밖에 모르는 일꾼이었다는 것이 나의 뇌리를 가득 채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들에서 허리 펴지 못하고 일만 하느라 일생을 보낸 어머니는 지금 허리를 펼 수 없다. 구부정한 허리 때문에 걷는 것조차 불편해 봄이면 꽃구경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싶어도 마음뿐인 삶이 되어 버린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바람은 가끔은 바다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산과 들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로서는 바다가 주는 의미가 크다. 뜻밖의 고백에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 싶어 마음이 짠하기까지 했다.


바다로부터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었던 그 간절함으로 가끔은 어머니를 모시고 바다를 찾는다. 바다를 가고 싶어 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언젠가 딸들은 주전바닷가를 찾았다. 늘 들에서 일만 하던 어머니의 모습과는 달리 확 트인 바다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찻집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에 딸들과의 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또 달리 느낄 수 있었던 그때. 바다를 좋아한다던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여름바다에 가면 온전히 나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그곳에서는 그냥 말없이 한참을 서 있다 와도 그것으로도 충분히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난 가끔 바다를 찾는다. 모든 것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한번쯤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어디든 누구와 함께든 진정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충분한 활력을 불어줄 수만 있다면 감사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마음을 더 여유롭게 해주는 것이 세월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바다의 잔잔함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팔순의 어머니 마음속에도 평온의 너그러움이 이 바다로부터 생겨난다면 우리에게 바다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있어 바다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그저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용서가 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라 생각된다. 내 삶의 가까이 바다가 있다. 그래서 삶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충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바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고맙다. 곧 여름이 가고 나면 당분간 바다도 조용할 것 같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해변이 여름과 함께 지나고 나면 바다는 아마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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