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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避暑)
 
김재범 자운도예연구소 대표   기사입력  2018/07/26 [19:44]
▲ 김재범자운도예연구소 대표  

역대급 폭염이 연일 최고온도 기록을 갱신하는 중이다. 오죽하면 차라리 태풍이 나타나 주길 바라는 속마음이 튀어나왔을까. 지난해 태풍으로 입은 아픈 상흔도 잊어버린 듯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드는 더위다. 고래로 우리나라의 기후는 겨울은 춥고 여름은 무더운 날씨가 특징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지혜는 생활문화 전반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나치게 춥거나 무더운 기후에서는 신체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흔히 말하는 더위를 먹게 되면 사람들은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 또한 쇠약해져 병약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해마다 거의 모든 기업이나 개인은 7월말부터 8월초 일정기간 휴가를 내어 피서를 다녀오곤 한다. 이러한 준비는 연초부터 더위를 피하는데 좋은 곳을 찾는다. 몸과 마음의 휴식으로 심신을 관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울산은 피서에 더할 나위 없는 역사이야기와 천혜의 피서환경을 겸비하고 있다. 강바람과 산바람은 기본이며 일천고지의 영남알프스 준령들은 일곱 폭 수묵화이다. 더하여 쪽빛 비단을 깔아놓은 짙푸른 동해바다는 최상의 선물이다. 선사시대 문화유적을 보유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유적이 있는 일대 주변은 아름다워 낭만이 있는 피서지였다. 태화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내곡천 중류 기슭 바위 벽면에 새겨져 있는 국보 제 147호 천전리 각석엔 신라시대 피서장소로 짐작케 하는 글씨와 그림들이 남아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신라시대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신라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주변 계곡의 맑고 깨끗한 냇물과 아기자기한 바위들만 봐도 이곳이 여름철 명품피서지로서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신라 23대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徙夫知) 갈문왕은 성스럽고 빛처럼 오묘한 멋을 가진 어사추여랑(於史鄒女郞)과 서기 525년 음력 6월 18일 새벽 천전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것도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왔다. 이곳에 머문 연유는 대략 두 가지 설로 전해진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왔을 것이라는 설과 두 사람의 관계로 보아 약간의 로맨틱한 휴양을 겸한 피서를 위해 찾았을 것이란 견해가 그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 두 사람이 모두 죽은 후, 사부지 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비(只沒尸兮妃)와 가족이 14년이 지난 539년 찾아왔다.

 

이 이야기의 단초는 바위에 새겨져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천전리 각석엔 여러 연도와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신라시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여름 피서지라 확증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양반사회라고 지체 높으신 분들만 휴가를 즐기진 않았다. 고려시대에는 삼복에 3일간의 휴가를 주어 여름에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했다. 심지어 이 기간에는 공사를 금했을 뿐만 아니라 음력 6월부터 입추에 이르기까지 얼음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여름에 더위를 피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는 반증이다.

 

한 기록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가깝고 먼 사이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냇물에서 같이 목욕을 한다고 전해진다. 혹, 이러한 풍습이 전해져 단오에 아낙들이 스스럼없이 냇가에 나와 목욕을 즐기던 모습이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 화폭에 담겼을 법한 상상이 든다. 정초의 풍습에도 여름철 더위를 얼마나 간절하게 피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정월대보름날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갑자기 상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 고 더위를 파는 놀이가 있었다. 해학이 묻어나는 재미있는 이야기 놀이문화이다. 정월대보름날부터 한참이나 지나야 찾아올 시작도 안한 더위를 경계하였던 것으로 볼 때, 더위는 극복하기 상당히 힘겨운 대상이었던 듯하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보편화된 요즘은 집안도 시원한 환경이 되었지만, 개중에는 찻집이나 백화점, 대형마트에서 열대야를 식히는 모습이 보통의 일상이 되었다. 옛날 옛적 정자에 모여 시를 읊고 차를 마시며 입담이 좋은 어른이 들려주던 가슴 오싹한 귀신이야기를 듣던 풍경은 기억 속에 잠겼다. 오늘날 유쾌한 한 가지 피서법을 제안하라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피서를 보낼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좋겠다. 이웃 부산시의 한 지자체는 값비싼 워터파크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무료개방 한다.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다.

 

울산은 암각화 박물관도 좋고, 울산박물관과 시내 중심의 문화예술회관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작품전시와 울산만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들려주자. 더하여 태화강십리대숲에도 지열 냉풍을 대숲에 불어넣고 시낭송회와 조각전시라도 펼쳐놓으면 우리 시골만의 문화콘텐츠로 살아남지 않을까?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문화향유를 통한 자존감이 올라갈 것이다. 이것이 인문의 숲에서 즐기는 피서법이 아니겠는가.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 죽선으로 일으킨 바람마저 숨 막힐 찰나에 문화피서법이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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