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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망의(見利忘義)
 
임일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무역경제학부 겸임교수   기사입력  2018/07/29 [18:58]
▲ 임일태한국해양대학교 국제무역경제학부 겸임교수    

아내는 연신 남자에게 굽실거리며 애원한다. 손에 쥔 만 원짜리 지폐를 남자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한다. "우리 남편이 이런 일은 처음이고, 건망증이 심해서 그러니 점잔어신 손님이 이해를 해주세요." 나를 최대한 망가뜨리고 남자를 추겨 세워줌으로써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심산이다. "사장님이 대신 사과를 했으니 참지만 다음부터 저런 멍청한 사람은 매장에 두지마세요."라고 말하고는 당당하게 매장을 나간다.

 

그 남자를 한 대 갈겨주고 싶지만 아내의 애절한 눈빛에 꺾이고 말았다. 속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었다. 아내의 계산법으로 판단한다면 내가 멍청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견리사의(見利思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일모래가 추석, 대목으로 매장 안은 선물을 사려고 온 손님으로 북적 거린다. 임시로 판매를 도와줄 아르바이트 학생을 여러 명 두었지만 늘어난 손님으로 일손이 모자란다.

 

추석 연휴 전날이라 조금 일찍 회사일을 마쳤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자마자 곧장 아내의 매장일을 도울 요량으로 나왔다. 나의 첫 번째 손님은 남자였다. 남자는 천 원짜리 양말선물세트 하나를 골라왔다. 오천 원을 받고 거스름돈을 주려는 순간 다른 물건을 하나 더 사겠다고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참을 고르다가는 찾는 물건이 없다면서 다음에 사겠다면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다.

 

사천 원을 주자 구천 원을 주어야지 왜 사천 원을 주느냐고 했다. 조금 전에 오천 원짜리를 받았다면서 받았던 돈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자기가 준 돈이 아니라며 나의 호주머니에 있는 모든 돈을 다 내어보라고 했다. 호주머니 안쪽까지 뒤집어서 보여주었지만 만 원짜리가 한 장도 없자 남자는 자기가 준 만 원을 어디에 감추었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고함소리에 놀란 매장안의 고객들은 슬금슬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런 나쁜 매장에서는 물건을 살 수 없다며 선물용 양말세트를 집어던지고는 자기돈 만원을 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는 재빠르게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하는 강하고 나직한 목소리, "오천 원을 잃기 싫어 오십만 원을 잃을 것이냐?"고 했다. "저런 인간은 파출소에 연락해서 제이 제삼의 피해자를 막아야한다 그것이 정의다." "정의 좋아하네! 당신이 가만히 있는 것이 정의요. 들어가 쉬세요. 그 것이 나를 도와주는 거요." 아내는 두뇌회전의 고수, 사건의 해결의 명수였다.

 

사건의 해결에 걸린 시간은 단 오 분, 오천 원의 손실로 오십만 원의 매출손실을 막아낸 여장부였다. 지금 아르바이트 학생의 일당은 일금 만 원이었다. 그 남자는 대목에 하루에 열 집만 해도 오만 원, 내 아내 같은 두뇌회전이 빠른 전문가만 만난다면 하루 스무 집은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십만 원, 아르바이트 열 명의 일당을 버는 재주꾼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자꾸만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생각났다. 그 남자도 아내도 돈 앞에만 서면 정의를 잊어버리는 견리망의, 적극과 소극의 차이만 있을 뿐 망의는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기에 눌려 더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수입보다 적은 수입의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호주머니 안에서는 남자의 오천 원이 나의 속을 후벼 파고 있다. 문제의 오천 원, 그 돈만 없어지면 속이 좀 편할지도 모르겠다. 소주에 취해 한숨 푹 자고나면 악몽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트에서 소주를 들고 나와 계산대에 오천 원을 내밀었다.  "손님 오천 원을 받았습니다. 계산해드리겠습니다." 줄지어선 계산대 마다 "손님 만 원......, 오천 원......, 천 원 받았습니다."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는 그 소리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예전에는 몰랐다. 그 소리가 견리망의의 예방 백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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