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기만 해도 체감 온도 40도를 웃도는 폭염에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밖에 나가 10분만 서있어도 온 몸에 땀이 촉촉하게 올라오는 것을 보며 시원한 물이 있는 곳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집이 아니면 밖에 나가는 것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무더운 여름을 맞아 우리 기관에서는 입소자들과 함께, 청도에 여름 캠프를 다녀왔다.
짧지만 굵은 1박 2일 일정이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들렀던 와인 터널은 에어컨을 틀은 집보다 시원하고, 다들 사진찍기에 정신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러 짐을 풀며, 수영을 신나게 하고 나니 배는 금방 고파진다. 캠프을 준비하며 가장 고대했던 바비큐를 해먹고, 저녁이 되자 청도에 있는 프로방스로 향했다. 찬란한 불빛들로 이뤄진 프로방스를 걸으며 인생 사진도 하나씩 건지고, 공중에서 루프를 타고 내려가는 짚라인도 타봤다.
목이 말라질 때쯤 전경에 다 내려다 보이는 시원한 카페에 가서 맛있는 음료를 마시며 하루 있었던 일들을 웃으며 애기해본다. 살벌했던 보드게임을 뒤로 하고 새벽이 돼서야 겨우 잠에 든다. 누가보아도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펑범한 가정에서 자라며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바쁜 부모님을 두었다 하더라도 태어나서 한번쯤은 겪어봤을 지극히 평범한 일상 중 하나- 그 평범한 일상 중 하나를 경험하는 것이 어려운 이들도 있다. 이들 모두 쉼터에 와서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다. 함께 탁구를 치고, 과일을 먹으며 대화를 하고,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이 작은 일상을 경험하는 곳이 바로 쉼터다.
어떤 이는 프로그램을 많이 해야지만 입소자들에게 좋은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쉼터의 진정한 역할은 입소자들이 안정하게 보호받으며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다.
가정내에서 또는 사회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일상적인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함께 밥을 먹는 것, 약속을 정하는 것, 인사를 하고 긍정적인 의사소통을 경험하는 것. 은행에 가고, 일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인터넷을 들여다 보며 고민하고, 물건을 구입해보는 것, 한번씩은 영화도 보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셔보는- 이 모든 것들이 쌓여 결국은 쉼터를 떠나 사회로 돌아갔을 때 이들이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필자가 상담소에 있었을 때는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내담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기에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24시간 운영되는 이 쉼터에 와서 그들과 함께 살아보니, 이제야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무너진 그들의 일상의 경험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다. 긴급한 문제를 해결한 뒤 그들이 또다시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는 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중 하나에 하나를 반복적으로 견뎌나갈 때 생기는 것이라 믿는다.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직원들도 하나 둘, 휴가를 떠난다는 소식에 입소자 한명이 무심코 한마디를 던진다. `우리는 여기 있는게 지금 휴간데.` 인생의 쉼표. 인생에 한번쯤은 멈춰 쉬어갈 수 있는 쉼표 같은 시간이 되길, 반복되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다시 사회에 나갔을 때 흔들릴 지언정 이전과 같이 무너지지 않는 힘을 키워나갈 수 있길 응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