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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밀실 사이…그 아득한 심연에서(1)
 
편집부   기사입력  2018/08/01 [19:12]
▲ 김형오 전 국회의장    

최인훈과 노회찬. 한 주의 시작일인 7월 23일 월요일. 오전 10시를 전후해 두 사람은 세상과 작별했다. 이 소식을 나는 그날 점심에야 알았다. 충격이었다. 깊지 않은 인연이지만 나에겐 생각의 점ㆍ선ㆍ면을 키워줬던 분들이다. 선약이 잡혀 있어 하루에 한 분씩 조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염천에 검정색 양복을 이틀간 입었다.

 

최인훈: 이념의 지표를 세우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다.  화요일에 찾아간 최인훈 선생의 빈소는 아직 조용했다. 방명록에 한 줄 남겼다.  "우리 시대 이념의 지표를 바로 세우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신 분."  정말 그랬다. 적어도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엔 선생의 `광장`을 읽지 않고서는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선생이 제시하고 정의 내린 `광장과 밀실`은 많은 것이 흐릿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던 20대의 나에게 화두였고 지표였다.

 

내 궁색한 청춘의 지평을 열어준 문이었고 창이었다.  `광장` 이후 나는 한동안 선생의 소설에 매료돼 살았다. `회색인`을 통해 백색과 흑색의 경계 지대를 은밀히 더듬으며 탐닉했다. `구운몽`, `총독의 소리` 등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정확하게 짚어내는 그의 작품들에 몰입했다. 작중 인물들과 더불어 고뇌하고 번민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밀실`이 나의 작은 뇌 안에서 크게 자리 잡아갔다. 그때 막걸리 몇 잔에 취기가 오르면 "최인훈은 당대 최고의 정치사회학자다!"라고 떠들어댔던 기억이 선연하다.  동아일보사 신동아에서 잠깐 기자 생활할 때 선생을 한두 번 뵌 적이 있다. 원고 청탁 때문이었으리라. 존경하는 작가 얼굴을 보며 몇 마디 나눈 대화가 초년생 기자로선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정치권에 와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좋아하는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광장`을 선택하곤 했다. `백범일지`를 들까도 했지만, 국회엔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차별화하려는 뜻도 내심 있었다. 몇 해 전 월간조선에서 `우리 시대의 고전`을 청탁했을 때도 나는 원고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광장`은 1960년대 벽두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새벽 4시의 사이렌 소리처럼 잠든 의식을 뒤흔들어 깨우며 등장했다. 전율 그 자체였다. 내 청춘의 독서, 그 맨 윗줄엔 `광장`이 있다."
글이 실린 월간조선을 편지와 함께 최인훈 선생께 우송했더니 선생은 최신판 `광장`에 손수 사인을 해 보내주셨다. 식사 자리에 모시려 했지만 건강이 여의치 않다며 후일을 기약하셨다. 

 

각설하고, 빈소에서 몸이 불편한 사모님이 아드님 윤구씨와 함께 맞아주셨다. 건강 상하시지 않기를 바라며 막 헤어지려는데, 음악 칼럼니스트인 윤구씨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한다. "제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에 대해 글을 쓰려는데 아버님께서 `참고삼아 보라`며 주신 책이 바로 `술탄과 황제`였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존경하는 대작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칼럼 집필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내 책을 건네주셨다니! 아, 졸저가 최인훈 선생에게 인정받았구나!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러워 윤구씨 손을 다시 한 번 잡았다. "난 이제 정치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지만 혹여 도움 될 만한 일이라도 있으면 서슴지 말고 연락 주세요."  내 책 속에 등장하는 오스만 제국 예니체리 군악대(메흐테르)에서 터키 군악대의 행진곡풍 리듬이 특징인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계하신 선생의 섬세한 지성에 새삼 감탄한 순간이었다. 최인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불멸의 작품과 예술혼은 언제까지나 길이 빛날 것입니다. 광장과 밀실을 초월한 그곳에서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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