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진명덕초등학교 교사     ©

강산이 두 번 하고 절반이 더 바뀔 만큼의 시간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선배 교직원들의 퇴임식을 보았다. 학교 행정 일선에서 육체적인 노동이 많이 필요한 각종 시설물 수리와 운용 등을 도맡아 온 기능직 주무관님의 퇴임에서부터 일선 학교의 기관장으로 학교내 교육과 행정업무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학교장의 퇴임식까지 지금까지 접해온 퇴임행사만 해도 십 여 차례 이상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조촐하게 퇴임하기를 원하셨던 모 초등학교의 황 주무관님은 전체 직원회의 자리에서 40 여 년에 가까웠던 당신의 학교 행정에 얽힌 추억을 담담하게 되뇌여 주시고 박수를 받으시며 떠나셨다.

모 교감선생님은 월요일 아침 학생들의 조회 시간을 빌어 교장선생님 대신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당신의 훈화 말씀으로 퇴임을 마무리하시기도 하셨다. 30여 년 동안을 초등 담임교사로 지내오신 어느 여선생님은 후배 교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을 편지에 담아 담담하지만 깊이 가득한 목소리로 읽어주시고 교단을 떠나 가시기도 했다.

체육진흥회(예전에는 학교 단위의 학부모회 대신에 육성회 또는 체육진흥회(어머니회)가 있었다)에서 후원(?)하여 정말이지 잔치판처럼 시끌벅적하게 퇴임식을 하신 교장도 있었는가 하면, 직원 회의시간에 교장실과 가까운 교실에 모든 교직원들이 모여 선생님들의 춤과 노래 공연, 헌정 시 낭송 등 구성원들의 공연으로 정년퇴임을 축하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흔들리기 시작된 이후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한 직장 또는 같은 직종에서 퇴임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사오정`, `오륙도` (45세 정년,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는 뜻)라는 말들로 대신 되는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애절함이 당긴 신조어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만 보아도 `정년 퇴임`이나 `명예 퇴임`이 쉽지 않은 꿈과 같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험`보다는 당장의 `실적`이 우선시 되고, 개개인이 그동안 쌓아온 `앎(knowhow)`보다 `스펙(specification)`을 더 우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해 보게 된다. 학교 현장은 그나마 일반적인 직장보다는 안정적이라는 곳이라 세간의 인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더 학생들과 교육활동에 대해서 눈앞의 성과보다는 소신껏 더 큰 안목으로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힘써주기를 바라는 사회적인 함의가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23일 늦은 오후에 효정고등학교 시청각실로 강연을 듣기 위해 참석했다. 국어 교사로 있는 어느 선생님의 정년퇴임 고별 강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효정고 선생님들, 그리고 퇴임하는 선생님과 연이 닿았던 많은 분들, 심지어 울산 교육감까지 참석하여 마지막 수업(강연보다는 수업이라고 부르고 싶다.)에 귀를 쫑긋 세우며 웃음과 눈물로 함께 그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40여 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울산 지역의 대부분 고등학교를 다니며 교단에 쏟으셨던 정성들을 짧은 슬라이드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그만큼 퇴임하시는 선생님의 교육 열정이 가득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을 `모든 교사들이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관리직(학교장이나 교감)이나 전문직(장학사와 같은)의 자리가 아닌 오직 교사의 입장에서 묵묵히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젊음과 열정을 불태웠기에 평교사의 퇴임이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보인 것은 아닐까 싶다. 퇴임하신 그 평교사의 이름은 `서상호` 선생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