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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再演)
 
김재범 도예가 (자운도예연구소)   기사입력  2018/08/28 [19:18]
▲ 김재범도예가 (자운도예연구소)     

올처럼 기록적인 폭염이 맹위를 떨칠 때 면 늘 궁금해진다. 전기가 없던 시절,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의 도움 없이 우리 선인들은 어떻게 무더운 삼복더위를 견뎌 냈을까? 신통방통한 묘안은 없을까. 몇 해 전부터 남도지방의 무등산 자락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탁열濯熱` 시회 재연을 매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나와 같은 피서법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세상에는 고수들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오싹한 기운에 절로 더위를 잊게 한다. 재연의 본으로 삼고 있는 원형은 `성산계류탁열도 星山溪柳濯熱圖`이다. 이 그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의 1590년 작품(목판화)으로 알려진다. 시내를 중심으로 왼편에 서하당(捿霞堂), 식영정(息影亭)과 오른편에 환벽당(環碧堂)이 자리하고 있다. 더하여 그림 밖의 정자 소쇄원 등에서 열한분의 선비가 6월 복날 더위를 물리치는 `시회`를 열었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 한 점의 작품으로 16세기말 담양을 중심으로 무등산 자락 호남 선비들의 교류 모습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

 

탁열(濯熱) 즉, 열을 씻어 내는 방법도 선비 체면을 생각해서였을까. `서하당유고`와 `창랑유집` 여기저기엔 선비들이 물가에, 나무 곁에, 정자 안에 버선을 벗어 던지고 평좌하여 계곡에 발을 곧 담그려는 다양한 장면이 그려져 있다. 너무 멋지고 낭만 가득한 남도 선비들의 진경(眞景)이자 조선의 품격이 아닐 수 없다. 장유유서가 엄연한 사회였건만 김성원의 `서하당유고`에는 참여자의 자호와 본관, 직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예순 여섯의 김성원이 좌장격이고 스물아홉의 장년 임회가 맨 밑이다. 그야말로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자리하고 함께 여흥을 즐겼다. 심지어 목사, 부사, 현감 등 고을 큰 어른들이 다 모였건만 관직도 벗어 던지고 갓끈도 풀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을 벗하고 우주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오히려 너나없이 하나가 되었던 것인가, 아니면 더위에 장사가 없었던 탓일까? 광주목사 `오운`의 시에 녹아든 정취는 퍽이나 인상적이다. "인연 따라 모인 선비들이 물소리 바람소리 거문고소리에 흥취가 돋아 시끌벅적 한마당 / 술병 들고 승경을 보면서 시를 읊으니 문학이 성행했던 사영운(謝靈運)의 강좌도 생각나고 / 모두가 지상의 신선마냥 / 무등산은 가을빛이 들어가고 푸른 대나무와 우거진 소나무도 이슬이 맺힐 듯 어둑해 지니 등촉을 부여잡고 시내 다리를 건너 소쇄원으로 돌아간다. 요즘이야 기술이 발달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서 SNS에 연신 올리기 바쁜 탓에  시 한수 엮어낼 정신들이 아득하다.

 

500여 년 전 조선의 생활문화 속살을 들여다보자면 그 당시 기념촬영은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느낌을 `제발 題跋`로 남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그릴(베끼다) 사`寫`, 참(생긴 그대로) 진`眞을 써서 오늘날 `사진寫眞`이라는 말이 되었다. 옛날 분들은 뭐라고 했냐면 `일호불사一毫不似 편시타인便是他人`이라 했다. 즉, 터럭 한 오라기가 달라도 남이다. 이것이 조선의 극 사실 회화 정신이자 사실을 기록하는 엄정한 정신이었다. 정확한 것으로 치자면 요즘의 디지털 카메라 만큼 정확한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엄정한 정신 속에는 `진선미眞善美` 가운데 예쁜 모습뿐만 아니라 진실한 모습, 참된 모습 모두를 담으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보이는 외면이 아닌 정신을 담아내려고 했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놓아야 할 듯싶다. `성산계류탁열도`를 재연하는 지금으로 부터 200여 년 앞선 조선시대에도 `재연再演` 행사를 기록한 소중한 그림 한 점이 있다. `기로세련계도 耆老世聯契圖` 가 그 주인공이다. 이 그림은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 나이 환갑 무렵에 그린 명작으로 보고 또 봐도 볼수록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요즘 말로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행사 장소는 경기도 개성시 송악산 고려시대 궁궐터인 `만월대` 자리이다.

 

그림의 줄거리는 개성 유지 64분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 모습인데, 왜 이런 잔치를 열게 되었는지 장문의 `제발題跋`을 `홍의영`이 그림에 적어 놓았는데 사연이 재미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1804년 개성유지 한분이 자신의 집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그림이 있어 펼쳐보았더니 200년 전에 조상들께서 만월대에서 잔치하며 여흥을 즐기는 그림 이었는데. 이거 참 귀한 작품이다! 하고 들여다보니 그림이 오래되어 빛이 발하기도 해 어두컴컴한 것이 유감이다 생각하던 차에, 아니 옛 조상들께서는 이렇게 모여서 화목도 도모하고 즐겁게 지내셨는데 2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도대체 무얼 하고 살고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괜한 그림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잔치를 우리가 재연해 보자는 취지에서 잔치를 열게 되었다고 쓰여 있다.

 

1804년경이면 송도 상인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아편 환자가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 치료에 고려인삼이 특효약으로 알려지면서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에 따른 수혜로 상인들은 큰 부를 쌓게 된다. 마침내 조선 400년 그늘에 가려져 지냈던 고려 유민들의 위세가 이만큼 커졌다고 만천하에 떨치고 싶었던 욕망이 넘쳐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오죽하면 조상이 물려준 퇴색한 그림 한 점에서 핑계를 찾아 재연 행사를 했을까? 역사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힘이 막강하게 되었음을 `기로세련계도`가 확인시켜주고 있다. 당시 `김홍도`는 임금님 아니면 상당한 권문세가에서나 부를 수 있었다. 그 뿐인가 예서의 대가 `유한지`와 행서 명필 `홍의영`같은 당대 최고의 서예가들을 총동원해서 기념촬영하게 했으니 가히 그들의 위상이 국보급이다? `재연은 이럴 때 이렇게 하는 것이다.`고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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