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나무 아래 잠든 시인 찾아 이 가을을 어쩌면 좋겠냐 토로하는데 시인은 병상에서도 쓰고 싶었다는데 제자 손바닥에 손톱 세워 한 자 한 자 마지막까지 썼다는데 일렁이는 가을 붉게 미쳐 가는데 저물도록 나무 행간 읽다 일어서는데 난데없이 수풀에 내동댕이쳐지는데 야무지게 고꾸라지는데 꽃무릇 꺾어 찾아왔는데 툭, 툭 달그림자 털어내는데 으앗, 도꼬마리다
섬광처럼 꽃 피는 것 보았다는데
시와의 씨름은 언제나 어렵다. 마음에 고인 것들이 가을 들판의 곡식처럼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펜은 무디고 마음은 초조하기만 했다. 가을 길을 헤매다 강화 전등사 나무 아래 잠든 오규원 선생님을 찾아갔다. 마음의 말을 하려는데 말문마저 막혀 참으로 답답했다. 해는 지고 어둑해질 때까지 앉아 선생님의 시를 읽다 일어섰다. 일어서다 기우뚱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이 그만 풀 섶에 나뒹굴어 지고 말았다. 온몸에 풀씨가 묻었다. 아! 섬광처럼 스치는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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