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일찍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배달을 했다. 40여 년 전 그 당시 야음시장 앞 큰 도로에 중앙화단이 있었고, 야음지하도로 사람들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신문이 얇아 옆구리에 끼고 배달했다. 집집마다 걸어 다니며 두어 시간 배달을 마칠라치면 손끝엔 새까만 잉크자국이 묻어나곤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세월이 흘러 신문지면이 32면이 되었다. 서울 본사의 윤전기가 숨 가쁘게 토해낸 신문뭉치는 청량리 완행열차에서 밤을 지새운 채 동대구역에서 내려졌고, 그 신문다발을 실은 대형트럭이 울산 곳곳의 지국마다 신문을 발송했다. 새벽 3시경이면 지국에 신문더미가 `퉁퉁` 바닥으로 떨궈졌다. 그러는 사이 걸어서 배달하던 신문의 운송수단도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바뀌었다. 20대 초반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신문지국의 총무를 맡았다.
새벽에 지국 식구들과 전날 일일이 수작업으로 작업해둔 광고지를 신문에 삽지해 신문배달원을 내보내고, 나도 오토바이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독자들의 집을 찾아 신문을 배달했다. 지금에야 자동이체나 지로용지로 구독료를 납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지만 그 당시엔 꽤 오랜 동안 구독료를 수금하러 다녔다. 지금 울산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데 재개발 대상인 집들이 그때는 가장 고급한 주택들이었다. 그 단독주택들과 더불어 층 낮은 연립주택들과 5층짜리 아파트들이 오랜 세월동안 호황을 누리더니 어느새 고층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 게 세월의 무상함을 말한다.
그런 단독ㆍ연립주택을 찾아다니며 한 달에 한 번씩 구독료를 받았는데 할부의 전형이었다. 간혹 그 중에는 연간 구독료를 납부하는 독특한 독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두 달 구독료를 할인받는 특권을 누렸다. 비단 신문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는 하루거래가 못물처럼 터지던 시기였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사진에 관심을 가지면서 구입한 일제 카메라와 타자기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워드프로세서도 할부였다. 군 제대 후 구입한 125CC 오토바이도 할부였고 그 후에 구매했던 차량 두어 대도 다 할부였다. 기실 현대인들의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거의 할부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특히 현금보다 카드를 즐겨 사용하기에 할부는 기본적인 옵션이 됐다. 현금이냐 카드냐 보다도 문제는 신용이 좋아 잘 갚을 수 있느냐 하는 게 관건이 됐다.
필자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미래를 내다보며 출판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작년에 개인 출판사를 신규로 등록했다. 사업하는 사람은 매출로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대출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울산시에서 소상공인 대출자금 지원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발행인과 함께 울산신용보증재단에 심사를 받으러 갔다. 상담하는 직원은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해줬지만 부푼 기대감과 달리 결과는 냉혹했다. 기업의 업력(業歷)을 본다는 전화설명을 듣고 찾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심사에 들 수 있는 충분한 매출과 개인의 높은 신용등급 등 융자받은 자금을 2년 안에 얼마나 잘 갚을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필자에게 와 닿던 말이 할부인생이란 단어였다. 좋은 부모를 만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는 사람이라면 선불인생으로 살 수 있을 것이지만 소시민들의 대부분은 할부인생이 아닐는지. 땀 흘린 노동의 대가는 귀하다. 이 가을, 그 소득으로 빚지지 않고 튼실한 가계부를 기록할 수 있기를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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