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우리, 식사를 하자
 
김명숙 시인   기사입력  2018/09/10 [19:08]
▲ 김명숙시인    

예고 없는 비의 세례를 퍼부으며 위대했던 여름이 끝나가려고 하네. 그침 없이 숨 쉬는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자유로운 것이었는데 그 숨 쉼마저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적응하지 못하는 몸을 데리고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을 흥얼거리며 그 핫한 축제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더위에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보다는 무사히 보냈느냐는 물음이 적당할 것 같구나. 난 한국사 강의를 들으며 이 여름을 살아낸 것 같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 이후 이 책 저 책에서 눈으로 읽고 귀동냥만 한 한국사였지. 아마 너도 마찬가지일거야. 마침 87강으로 잘 정리된 한국사 강의가 있더라. 꿰어놓은 곶감을 빼먹듯이 하나씩, 87강을 다 듣고 나니 여름이 갔네. 매일매일 강의를 들으면서 한숨과 한탄도 더러 있었지만 기쁨과 슬픔, 자부심과 분노 등이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동맹을 맺었다가도 금방  돌아서서 배반하는 모습이 지금의 정치판을 보는 듯했고, 거란과 몽골의 침략에 외교와 전술로 나라를 지키는 고려를 보면서는 안타깝기도 했다. 힘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던 어느 교수의 이야기에 수긍하기도 했지. 역사에서 뭐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물가에 세워놓은 빈 배에다 한국사의 짐을 차곡차곡 실은 셈이었다. 그 짐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충만감이 느껴지면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가녀린 바람 몇 자락이 햇빛을 끊어주던 날 대구미술관을 다녀왔다. 보화각 설립 80주년을 기념하여 `간송 조선회화 명품전`이 열리더라.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허유, 이징, 신사임당 등의 작품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그날의 바람만큼 신선한 감동이었지. 여름의 냄새가 다르고 가을의 냄새가 다르듯이 그림마다 냄새가 다르더라. 그러나 그림들끼리 서로 밀어내지 않고 일가를 이루듯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 제 집인 양 편하게.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문화재의 수집 보호가 뒷날 문화 광복의 기초를 이룰 수 있다는 신념으로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였다고 한다.

 

보화각을 지어서 보관하였고 그것의 이름이 바뀌어 간송 미술관이 된 것이지. 청화백자 한 점을 그 당시 기와집 일곱 채 값을 주고 구입했다고 하고,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5,000원을 주고 구입하여 다시 복원하는데 6,000원이 들었다고 하더라.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11,000원에 구입하여 일제에 빼앗길까봐 베개 밑에 넣고 자고, 6ㆍ25동란 중엔 품에 안고 다녔다는 일화가 있다.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은 왜곡과 폄하가 가해졌던 부분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그림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조선의 문화 역량을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TV드라마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노비의 아들이 신미양요 후 미국 군함에 승선했다가 미국 군인 신분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드라마이다.

 

드라마라는 특성상 다른 부분이 끼이기도 하지만 1900년부터 1905년 사이 이름도 없는, 기록되지도 않은 의병들의?활약을 그리고자 하는 것 같다. 덤으로 그 시기 조선(대한제국)의 모습이 많이 보이네. 가배를 즐기는 고종황제와 일부 귀족들, 전등이 시내에 처음으로 밝혀지던 순간에 놀라는 백성들, 제물포까지 기차가 개통되자 허둥대며 그것을 타는 모습, 빙관이라 불리는 서양식 호텔의 모습, 사탕과 빵을 파는 양과점의 모습 등등. 한편으론 일본인의 오만방자한 작태와 일본과 미국의 은근한 세력 다툼, 역관들끼리의 미세한 힘겨루기, 숨어서 활동하는 의병들의 모습이 의도를 가지면서도 무심한 듯 그려지고 있다.

 

일본군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곧 `한일의정서`가 도착할 것 같아 위기감이 더해진다. 드라마로 역사를 읽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임진년 의병의 자식이 을미년의 의병이 되고 그 자식이 다시 지금의 의병이 된다."며 일본인 장교가 말하더라.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대사였다. 을사늑약이 끝난 후 어느 일본 학자가 그랬다는구나. "왕이 도장을 찍었는데 왜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키는가?"라고. 역사란 애증의 대상이지만 애정이 훨씬 큰 과거와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자취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고,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바를 살피는 것이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이리라. 우리 역사를 공부해보는 것은 어떻겠니? 우리, 식사(識史)를 하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8/09/10 [19:08]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