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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옥이
 
강이숙 수필가   기사입력  2018/09/20 [18:54]
▲ 강이숙 수필가    

고향 친구가 아들을 장가보낸다는 전갈이 왔다. 안동이라서 먼 거리였고 주말이라 다른 일이 겹쳐 망설였지만 서울 옥이가 온다는 소식에 쉽게 결정을 내렸다. 중학교 졸업 후 근 마흔 다섯 해 만의 만남이라 적잖이 설렜다. 중간에 딱 한 번 동기회에 해후했지만 짧은 시간 얼굴만 보여주고 바로 올라가 버렸기에 무척 아쉬웠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른 시간, 옥이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전화를 했다. 부드럽고 상냥한 말씨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순간 멈칫하고 음성을 가다듬었다. 정제되지 않은 경상도 사투리는 세월의 간극 앞에 작아져버렸다.


먼저 도착한 그녀가 홀 입구에서 환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훤칠하고 고왔다. 왜소한 나는 주눅이 들었지만 그저 반갑기만 했다. 이번 만남은 미리 동기회를 겸하기로 했던 터라 참석 친구들 모두 1박하는 일정을 잡았다. 이슥하도록 여흥을 즐기다가 집이 가까운 친구들은 가고 먼 친구들만 남았다. 여자 친구는 옥이와 나 둘이었다. 서울과 울산의 거리가 그동안 떨어져 있던 세월을 하나로 뭉쳐주었다.  둘 만의 오붓한 공간에 여장을 푼 우리는 양쪽에 놓여 있는 침대 하나씩을 차지해 팔베개를 하고 마주보며 누웠다. 난 우선 옥이가 왜 갑자기 서울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러고 나서 소식이 끊겨버렸으니까. 기억을 더듬은 유년의 실타래가 술술 풀려 나왔다. 그러던 중 새로운 사실 하나가 내 머리를 때렸다. 초등 6학년 때 병환으로 어머니를 여읜 일이었다. 그 여파로 바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한 해 후에 입학을 했다. 그래서 나와는 초등학교에서는 1년 선배였지만 중학교는 동기였던 것이다.  그녀는 키가 커 제일 뒷자리였고 나는 맨 앞자리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막내였던 그녀는 친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나는 그녀가 그때 엄마를 잃은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그 어린 나이에 많이 슬프고 외로웠을 텐데 내색 않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한 속 깊은 친구이자 언니처럼 다정했던 옥이, `나 같았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다행히 언니 오빠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메꾸어주어 순탄하게 이어 갈 수 있었다.

 

졸업 후 서울 언니가 곧바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거기서 고등학교와 대학과정을 마쳤다. 후에 홍대 앞 도서관에 근무하던 중 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끈질기게 계속되는 구애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대학교수인 남편은 반듯했다. 저명한 서양화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며 창작욕과 예술혼을 불태웠으니 아내도 그에 잘 부응해 주기를 바랐다. 또한 장남으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효자였다. 평소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교과서적인 이론들은 그녀에게 들이대며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도를 다하는 완벽을 요구했다. 숨통이 막혔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을 죽이고 남편의 뜻에 맞추어 나갔다. 그러했으니 자연히 친구들 동기회며, 계모임, 여행 등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자식들에게 "너들 아버지한테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정을 밝혔다. "어머니 뜻대로 하시고 자유로운 길을 택하세요."


눈물 머금은 자식들의 배려에 가슴이 찢어졌다. `그것이 과연 최선의 길일까?` 오랜 고뇌와 방황을 접고 모든 짐을 짊어지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파른 3부 능선을 넘어 고지를 탈환했다. 심호흡을 하며 끝없이 흘러내리는 비지땀을 닦는다. 저만치 서 있던 남편이 다가와 "수고했다. 그동안 잘 살아줘서 고맙다"며 어깨를 토닥인다. 이제부터 당신의 인생을 꾸리라고,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가라고 했다. 만감이 교차하며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래, 같이 잘 살아보자고 그랬겠지. 왜 네가 소중하지 않았겠노?"


나는 진심어린 덕담을 건넸다. 주어진 삶을 지혜롭게 잘 대처해 값진 인생승리를 이룬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엄마 잃은 슬픔을 온전한 가정을 지키며 얼마나 속울음을 삼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평온하게 정돈된 그녀 얼굴을 본다. 보이지 않는 내공이 묻어나는 넉넉한 인품도 느꼈다. 낮에 결혼식장에서부터 친구들에게 좌석 안내며 식사 등 남달리 세심하게 챙기고 배려하는 걸 눈여겨보았었다. 기억 속으로 원점회귀한 자리에 다정하게 미소 짓는 옥이가 서 있다. 그 옆에 어린 꼬마인 내가 있다. 불씨 속에 둘의 우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옥아! 내년 동기회에도 꼭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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