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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기도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8/09/27 [18:51]
▲ 유서희 수필가    

한가위 명절을 맞아 언니네 집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머리 위까지 내려 온 달은 그 크기가 과연 위압적이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를 삼킬 듯한 위세로 한참을 따라오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달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달을 보는 두려움을 외면한 것이다. 달빛을 두려워하게 된 그 때가 떠 올랐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을 깼다. 추석날 밤 늦게 잠이 들었으나 눈을 떠 보니 새벽 4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화장실을 갔다가 일어나면서 갑자기 찾아 온 뇌졸중이었다. 집안은 삽시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어머니는 바늘을 가져 와 아버지의 머리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정신을 잃은 아버지의 핏기 잃은 얼굴 위로 서슬퍼런 칼날 같은 달빛이 얼굴의 윤곽을 타고 흘러내리자 주검의 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 때의 섬짓함을 생각하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소름이 오싹 돋는다. 혼이 나간 듯 바늘로 사정없이 아버지의 머리를 찌르는 어머니의 모습과 아버지의 얼굴에 비친 그 달빛은 그 후 깊은 공포로 나의 가슴 속에 각인 되어 있다.

 

어머니의 혼신을 다한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택시를 불러 큰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를 태운 택시가 여명을 업고 길 위를 달렸다. 부산에 있는 병원에선 촌각을 다투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직장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며칠 뒤에야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병실에 누워 계시는 그 모습에 그만 숨이 막히고 말았다. 목으로 구멍을 낸 자리에 플라스틱 꽂혀 있었고 그것을 자꾸 떼어 내려는 아버지의 양손은 가죽끈으로 침대 난간에 묶여 있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손목에 피멍이 짙게 드러났다. 결국 병원에서 일주일의 시한부 생을 선고를 받고 아버지를 집으로 모셨다. 의식이 돌아오자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당신 손으로 목구멍의 플라스틱을 떼어 낸 것이었다. 병원에선 그 플라스틱을 떼어내면 목구멍이 막혀 3일을 넘길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집안의 어르신들은 장손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점점 회복하시더니 그로부터 몇 년을 더 살다가 뜻밖의 사고로 별세하셨다.

 

추석이 다가오면 고향으로 달려가는 기쁨과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한가위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주검의 빛을 타고 흐르던 달빛과 가을 속의 여름같이 남아 있는 그날의 아픔이 남아 있어 지금까지도 추석 명절을 마음 속에서 밀어내게 한다. 예부터 달을 향한 기도가 있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의 기도가 달을 향했고 공활한 하늘에 휘영청 달이 떠오르면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소원을 빌던 어머니의 기도도 달을 향했었다.

 

정월 대보름날, 환한 달의 모습을 보이면 할머니는 볏 짚단을 들고 집 앞의 논으로 가셨다. 볏 짚단에 불을 붙여 세워놓고는 달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하셨다. 할머니의 간절했던 기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달은 가만가만 그 기도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어린아이였던 나에게도 전해졌다. 보름달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함께 해 왔다. 12달의 달을 노래로 엮은 것이나 빵의 이름을 보름달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있었다. 빵과 빵 사이에 새하얀 크림이 들어가 있어 독특한 맛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빵이 있지만 그 때의 빵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작은 것에까지도 우리의 마음이 보름달같이 둥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지혜가 담겨 있다.

 

한가위 보름달의 달빛은 온 세상을 비추고도 남을 정도로 밝지만 나는 여전히 달빛이 두렵다. 붉은빛의 달일 때는 온화하여 마음이 편안해 지지만 눈이 시리도록 맑은 밤하늘에 고요하게 어둠을 밝히는 달을 만날 때면 추석날 쓰러진 아버지의 얼굴을 비추던 달빛 같아 또 다시 섬뜩함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푸른빛으로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달의 풍경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달빛을 좋아하는 것은 깊은 내면에 달을 향한 동경이 깊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빛기도`. 추석 때마다 인사말로 활용하는 시의 제목이며 좋아하는 말이다. 보름달을 향한 우리의 기도는 모난 마음을 둥글게 하여 서로 손잡고 하나 되는 세상, 둥근 삶을 살아가자는 기도일 것이다. 이제는 나도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잊고 달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달빛기도를 위해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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