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아 울산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개최됐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이 고장 출신이라며 가는 곳 마다 선생 존함을 도배질 해 놨다. 게다가 `한글 도시`란 자작 명칭까지 버젓이 내걸고 있다. 정녕 이러려면 평소부터 그 어느 곳보다 한글을 아끼고 소중히 했어야 한다. 그런데 울산시나 5개 구군이 외래어 간판을 한글로 고쳐 쓰자며 한번이라도 나선 적이 있었나. 한글날만 되면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지는 관련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행정관서에다 공문에 외래어 대신 한글로 표기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사실이 있는가. 

행정용어들이 온통 외래어다. 방송 자막은 영어로 뒤범벅이다.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들이 이 모양이다. 문제는 이런 지적을 하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제 것 귀한 줄 모르는 집안치고 올바른 집안이 없다`는 옛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곳은 난장판일지언정 울산만이라도 한글 바로세우기에 나서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한글날에 즈음해 외래어 행정용어를 한글로 바꾼다, 일본말을 몰아낸다는 등 요란을 떨다가 얼마간 지나면 한글 대신 외래어가 다시 판을 친다. 일부 계층은 외래어를 사용하는 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낯간지럽다. 매해 이맘때마다 반복됐던 일 아닌가. 그러다가 시간만 지나면 `인프라` `글로벌` `에코`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나. 다른 지역은 몰라도 최소한 울산만은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도대체 다른 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러고서도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울산 출신임을 말할 수 있는가. `한글 도시` 운운 할 수 있나.  

`한글 도시`라면 그에 걸 맞는 격식 정도는 갖춰야 한다. 한데 다른 도시보다 간판에 외래어는 오히려 더 많다. 그에 대한 핑계는 `글로벌`이다. 세계로 나아가려면 기업이나 공공기관, 단체가 외래어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관서 서류에 외래어가 적잖이 섞여 있는 건 무엇 때문인가. 꼭 그런 외국어를 사용해야 세계적이고 돋보이는 행정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 개혁해 결과를 보여주는 개인, 단체, 사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독 문화ㆍ예술분야에서 외래어가 마치 모국어처럼 통용되는 현실을 우리는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노래 가사가 온통 외래어로 돼 있어 가수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런 잘못을 뜯어 고치는 데 울산이 앞장서야 한다.
서울시가 2012년 `한글 마루지 사업`을 시작했다. `마루지`는 `랜드 마크(land mark)`란 외래어를 순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부산에 가면 아시아 태평양 정상회담을 했던 곳으로 `누리 마루`란 곳이 있다. 누리 즉 `세상`에다 꼭대기를 뜻하는 `마루`를 합성한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말이 수두룩하거늘 자칭 `한글 도시`라는 울산은 공식명칭으로 과연 얼마나 많은 순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는 지 묻고 싶다.

태화강 십리대숲에 `에코폴리스`란 돌비석이 서 있다. 공문서나 신문기사에 `연구개발`이란 용어 대신 `R&D`라고 쓰고 있다. 이맘때만 되면 `한글도시`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이제 연중 모든 기관들이 외래어 대신 한글을 사용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글 도시`답게 우리가 먼저 바꾸고 사용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퍼져 전국적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지자체, 교육계, 언론기관이 힘을 합쳐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