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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과 제사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교수   기사입력  2018/11/06 [19:32]
▲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교수    

천벌을 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번의 결정이 천륜을 어긴다하여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각오로 결행한 것이 아닌가. 아버지의 기일, 이십여 연간 지내던 제사를 그냥 지나치려니 종일 서운하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괜한 일을 벌인 것이 아닌지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이미 정한 일에 후회한들 소용이 있으랴.

 

올해는 아버지의 탄신 백주년이다. 작년 제사를 끝으로 올해부터 대신 생일상을 차리기로 했다. 제사는 조상을 섬김으로서 효도 사상의 고취와 가족 간의 화목 등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미약한 논리와 지나친 형식주의는 과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적절하지 못하였다. 인공위성이 달나라에 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고 알파고가 인간에게 바둑을 이기는 세상이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대가족시대에서 핵가족시대로 바뀌었음에도 전통을 고수한다는 명분으로 무조건 답습하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전통의 무조건적인 고수는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제사 본래의 취지인 가족 간의 화목보다는 불화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미래지향적인 효도문화를 우리 가족부터 먼저 시행하겠다는 것이 천벌을 받을 죄를 짓는 것은 아닐 것이리라.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시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제사는 가족이라는 작은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 국가의 전통과 문화에 관한 문제이다. 가족이라는 범위도 모시는 제사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집은 삼대봉제사를 한다. 조부모와 증조부모의 제사는 사촌과 육촌까지 포함한 소문중의 합의가 필요하기에 종손인 나 혼자서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제사부터 형제자매가 의논하여 바꾸기로 했다. 작은 가족의 결정이 문중으로,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생성과 소멸이란 화두를 생일과 제사로 연결시켜본다. 누구나 세상에 존재함을 가장 큰 축복으로 알고 있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만물이 생성되고 천체의 움직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우주의 주인이다.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생성되고 소멸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창조주의 피조물로써가 아니라 나의 부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은 부모님의 부모님이…, 그 부모님의 부모님이 존재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 원인을 근인주의에 국한시킨다. 내 존재의 근인은 부모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제사 대신에 생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얼마 전 외손자가 아내의 생일날 보낸 카드에 "외할머니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낳아주셔서 내가 태어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라는 문구를 보고서였다. 초등학교 5학년의 논리, 거창하고 깊이 사색해야할 만큼의 철학적 사유를 가진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를 감동시키다니. 생일은 생성을 제사는 소멸을 기리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부모님이 태어났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부모님이 돌아가셨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영원히 사신다고 해도 우리는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완전히 소멸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형제자매에게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이기도 하고, 마음 씀씀이도 어찌 그리 닮아 가는지. 부모님의 몸과 정신은 형제자매에게 고스란히 살아 계신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한강을 이루듯 부모님이 우리의 형제자매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형제자매의 몸속에 살아계신 부모님께 제사를 지낼 수는 없다. 인류의 스승으로 많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살아있는 부처님과 예수님의 생일은 경축하고 있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보지 못했다. 적어도 각자의 기준으로 보다면 그 분들 보다는 부모님이 훨씬 위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부모님이 우리의 몸속에 살아계신다는 논리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백세시대라 하지만 부모가 백세를 더 사신들 어느 자식이 슬퍼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백세를 사셔야 자연현상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백세가 될 때까지는 제사를 추모일로 하여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추억하고 아쉬워하면서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백세가 되면 그때부터 제사 대신에 생일을 하도록 정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의 환경에서 조상에게 진정 효도하는 것이리라. 이해하기 힘든 제례문화를 전통이라는 굴레로 무조건 답습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다. 이를 벗어버리자. 새로운 가족의 문화를 우리가 먼저 만들어 미래의 삶에 대비함으로써 가족이 행복한 전통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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