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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
 
김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8/11/19 [17:53]
▲ 김순희 수필가    

추수가 끝났다. 가을 단풍놀이 나선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 한창 밭을 일구고 가을걷이에 한창이실 어머니의 모습이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 한 해가 다르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생각이 깊어진다고 말이다.

 

이제 들에서는 하루 종일 어머니 모습을 보기 어렵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들녘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일이다. 창고마다 손 떼 묻은 농기구들이 가득하고, 제 때 제대로 사용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그저 바람이 될 뿐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어머니 대신 휴일마다 들리는 이가 있다. 밭을 일구어 철마다 거둬들이는 재미에 푹 빠진 한 사람. 어머니의 큰 사위는 농사일에 손을 떼신 어머니 대신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굳건히 어머니의 땅을 지키고 있다. 그 속에서 대를 잇는 역사적 사명감보다는 외로움을 달래주고 아쉬움을 채워줄 그래서 바라볼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어머니한테는 큰 의미를 전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벗어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였지만 결국  가고 있는 곳은 고향이다. 나뿐만 아니라 어쩜 우리 모두가 그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그리운 이가 그기에 있다는 것 역시 행복한 일이다. 갈 곳 없어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야할 곳이 거기라서 간다, 참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고향의 사계절이 늘 다르다는 것을.

 

특히 이 가을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풍성함이 가득하기 때문에 좋다는 것보다 영글지 못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깊어지는 동안 성장하여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값지다, 라고 말하는 것. 그것에는 우리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있고, 살아가는 이유가 전해진다. 논과 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면 자연의 적절한 영양분들이 성장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이치. 그것을 배우는 것이 또한 우리의 인생이다. 팔십 평생 흙을 만지고 살아오신 어머니의 인생은 오직 자식과 가정을 위했다. 그 과정에 수많은 삶의 갈등과 행복의 가치들이 스며있음을 어쩌면 어머니는 아셨는지도 모른다. 가을걷이를 하면서 인생을 말한다.

 

땀 흘리며 고생한 덕분에 추수의 기쁨도 크다. 허리를 펴지 못해 걷는 것이 부자연스런 어머니지만 지팡이를 짚고 논두렁을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잘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평생 어머니의 마음 아니겠는가. 황폐하게 변해가는 땅이 아니라 윤택하게 잘 가꾸어지고 그곳에서 잘 자란 작물들이 계절의 흐름 속에 풍성함을 안겨주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다. 양파 심어라, 마늘 심어라, 고춧대 뽑아라,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은 어머니의 땅에서 가족 대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어머니의 큰 사위는 말없이 땅을 일구고 있다.

 

그런 사위 옆에 든든한 조언자, 어머니는 기름진 인생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흙을 만지지 않겠다고 늘 말하지만 막상 손에는 호미를 쥐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계신 것은 다 하지 못한 밭작물 재배가 아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인생을 살고 싶은 바람이 더 간절해서가 아닐까. 올해 어머니의 배추밭에는 배추가 없다. 모진 태풍에도 벼가 쓰러질까, 논이 떠내려갈까, 걱정하던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오로지 배추 걱정만 하셨던 어머니 배추밭에 한포기도 남지 않은 배추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는 몇 년 동안 잘되지 않던 배추 재배 때문에 올 봄부터 신경을 바짝 쓰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더운 여름에도 정성들여 배추를 가꾸었는데, 영양제를 뿌린다는 것이 그만 풀 약을 쳤다. 그것도 어머니 밭뿐만 아니라 사위가 일궈놓은 배추밭까지 모조리 풀 약을 쳤다. 그 일 있은 후, 어머니는 밭에 가지 않고 계신다. 당신이 한 행동에 스스로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더 이상 일은 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린 듯해보였다. 어머니는 며칠을 앓아누우셨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난 마음이 반반이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으면서 또 한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를 나약하게만 볼까 싶어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있다. 얼마나 그 인생을 잘 살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인지에 성공의 결과가 있는 것이다. 가을걷이는 끝났지만 어머니의 인생걷이는 앞으로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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