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고장 난 가방
 
이경숙 시인   기사입력  2018/11/20 [15:19]

 가방이 고장 나서 수선 집에 들렀더니 주인 잃은 가방들이 방구석에 쳐 박혀 있었다. 수선집 주인은 지퍼가 고장 나 새 것으로 갈아야 한다고 했다. 양가죽 가방의 지퍼를 뜯어내고 새것으로 박음질 하는 동안 그 집의 가방들이 주인을 찾아 나선다. 무명천으로 된 것은 목화밭으로, 비닐가방은 주유소로, 소가죽으로 된 것은 외양간으로, 나는 양을 만나려고 들판으로 가다가 길을 잃었다. 양을 기르는 들판은 너무 멀고 어두웠다. 양을 몰고 가는 목동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끝이 안 보이는 푸른 초원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목동은 갓 짜놓은 양의 젖을 마시라고 내놓는다. 비릿한 맛이 가시지 않았으나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나는 그제서야 업고 간 아기가 생각 나 등을 만져보니 아기는 없고, 양의 목도리만 들러졌다. 주인은 뜯어낸 지퍼에서 양의 털을 뽑아내면서 아기를 찾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끄덕이자 인형을 건네주었다. 아주 귀엽고 조그만 어린 양이었다. 어린 양은 털이 곱슬곱슬하고 눈이 까맣다. 가방을 건네받는 동안 양의 털은 점점 수북하게 자랐다. 어린 양은 음메 하면서 어미 양을 부르고 있었다.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귓가에는 어미 양을 찾는 새끼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 이경숙 시인    

엄마가 만들어준 가방에는 깍두기와 콩자반이 담겨진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날 기다려주는 손을 잡고 목화밭 옆길로 뛰어갔다. 목화밭에선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헝겊으로 만든 인형은 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머리는 곱슬머리였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명학이와 대식이는 서울로 이사 가고 목화밭은 젖소와 한우를 기르는 축사로 변해 있었다.
서운한 기분은 오랫동안 나를 짓눌렀다. 헝겊인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보냈을까. 걸친 가방은 소가죽으로 만든 건데 가벼운 양가죽으로 바뀌었다. 밤마다 가방은 고향을 찾아나섰다. 뒤를 따라가노라면 푸른 초원이 펼쳐진 구릉지가 보였고 풀피리를 부는 목동이 양떼를 몰고 갔다. 옛날 대식이가 잘 부르던 노래를 목동은 풀피리로 불었다. 뒤돌아보며 손짓하는 목동의 얼굴은 명학이었다. 셋은 푸른 초원에서 뒹굴었다. 새끼양은 우리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인형을 업고 뛰었다. 얼마나 넓은지 초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옆에는 새끼양이 있었다.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8/11/20 [15:19]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