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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의 미
 
김재범 도예가 자운도예연구소 대표   기사입력  2018/11/28 [18:07]
▲ 김재범 도예가 자운도예연구소 대표    

늦가을 창문 밖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달린 마지막 잎사귀를 바라보며 불현듯 `비애悲哀의 미美`를 떠올린다. 미술이나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들어 귀에 걸렸을 법한 말 일듯 싶다.


`비애`는 슬퍼하고 서러워함 또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인생의 불행과 고통이나 고뇌 같은 것을 소재로 삼아서 독자에게 비애감을 느끼게 하려는 글들을 `비애소설`이라 말하지만, 한 나라의 예술정신을 간명하게 정의 내리는 것은 무리가 있겠다. 그럼에도 한국 미술을 정의 내린 사람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다.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이자 연구가로, 미술평론가이기도 하다. 미술용어 중 민예民藝, 민화民畵도 그의 글을 통해 쓰이고 있다. 민화로 불리기까지 정확한 이름으로 정리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나 그의 주장이전에 속화俗?라 불렸던 것을 격을 갖추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한국의 미를 `선의 미` `백색의 미`라 규정하고 이를 통틀어 `비애의 미`에 방점을 찍었다. 심지어 `백의민족`이란 말도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한다.

 

이러한 결론을 얻어내기까지 스무 차례 정도의 조선지역 답사와 우리공예품 수집을 통하여 이루어 졌다. 그의 나이 불과 30세 초반에 이루어진 작업들이다. 그러함에도 우리 식자들은 그 흔한 평론 한편 찾아보기 어렵다. 그럴만한 식자도 용기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아할 뿐이다. 오히려, 공예의 민중적 가치에 대해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또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미술의 특성과 가치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학자다. 이렇듯 후하게 평가하는 우리 학자들이나 책들이 아직도 태반이다.


그의 미학과 사상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학자들이 많지 않다 오히려 적극 인용한사람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국내 미술사학계가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있기도 하여 비판을 회피한 탓도 크다. 세월은 흘러 그가 세상을 떠난 뒤 23년만인 1984년 9월 대한민국 정부는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하고 그의 아들 `야나기 소리(柳宗理)`에게 훈장을 전달한다. `우리나라 미술품 문화재 연구와 보존에 기여한 공로`를 국가가 인정한 셈이다. 공과에 대한 충분한 숙려기간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향으로 필자도 같은 해 `조선과 그 예술`을 구해 읽으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책장을 넘겼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 얘기할 땐 한ㆍ중ㆍ일의 미술을 비교하는데도 명료하게 정리된 그의 논지를 그대로 소개하곤 했다. "중국의 예술은 형태미요, 일본의 예술은 색채의 미이며, 한국의 미는 선의 미다. 선은 그리움이요 기다림이다..." 한편의 시를 읊조리듯 인생과 예술을 버무려 이야기하곤 하였다. 지금에 와서야 뒤통수가 후끈 달아오름을 씻을 수 없지만, 가치관이 영글기 전 그 당시엔 묘한 마력에 이끌렸다. 공예는 하나의 예술체이면서도 생활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필자도 작업한 그릇을 말할 때 `쓰임의 미학`이라며 소개하기도 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렇게 말한다. 공예미란 "사용에 근거한 아름다움이다" 우리 문화와 약간 다르게 일본에서는 그 작품의 소장자가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작품의 가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부분에서도 일반 사람들은 공예와 예술 간의 차이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학적 시각 식민사관적 온정주의는, 일본 조선총독부 소속의 일원으로서 고도로 계산된 논고일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일각도 있다.

 

시대나 시기적 배경으로 본다면 합리적 추론과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갖가지 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의 미학적 논고가 회자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가 일본을 탐방할 때 특이하게 경험한 일인데, 도예가라며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선생이라는 칭호와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공예작가로써 어떤 자세로 사유하고 작업을 해야 할지 거듭 생각하게 만드는 바탕이 부러웠다. 혹여 그 바탕이 `야나기식`의 힘 아니겠는가. 우리 공예인들에게 끼친 공이라면 애써 부정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문화를 과도하게 정의하여 획일화한 부분은 과감히 해부해볼 당위가 있다. 이제 부터라도 활기찬 우리문화를 사회학적 시각과 일명 `야나기식` 관점을 비교하고 평가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역사, 철학, 과학이나 학문이 되었든 한국 문화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21세기 미술에서 민족성을 되새김질 한다는 것은 무의미 할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 미래를 웅비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이다. 나아가 `야나기식` 시각으로 한국의 미를 덧칠하는 것에 맞선 철학 사상적 문화담론이 형성되어 공감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제 부터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비평의 물꼬가 트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편 인문학이 살아나야 하고 사상가나 미술평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건강하고 좋은 작가들이 문화예술 시장을 우뚝 세울 수 있다. 국내 제대로 된 미술 평론지면 하나 없는 상황부터 바꾸어야 한다. 민간 스스로 설 수 없는 토양이라면 정부가 연구기관을 만들어 서라도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한국미를 이야기 해야만 하는가. 우리의 공예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예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각각의 작품은 왜 그러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것이 왜 사람들에게 중요한지 알아야 진정한 예술과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춥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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