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죽은 꽃자리에서 꽃이 피어났다 맨살의 상처가 말문을 열었는지 꽃에선 까칠한 냄새가 났다 나무가 외따로운 곳에 뿌리내렸으니 봉오리는 향기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뿌리가 어둠의 가슴을 짚은 손이라면 꽃은 뿌리가 깊은 데서 길어 올린 말 꽃은 나무의 아픔을 뜻하고 말은 가슴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옛 꽃이 지기 전에 알았어야 했다 나무가 생소한 말을 시작했을 때 꽃말도 멋쩍어 진작 떨어졌겠지
새 꽃에 검은 이름이 오르내리나 나는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한다 숭고한 것은 속된 이름을 뒤집어쓰는 법 이제 내 아침은
어머니가 밤마다 몰래 피운 꽃을 맨정신으로 맞이할 수 있다
핏기없는 겨울날인데도 꽃은 시들 줄 모르고 피어난다
사람은 세월의 흐름을 체감하는 일에도 이기적일까? 나만 나이를 먹는지 알았더니 어머니는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늙어 가고 계셨다. 그렇게 나만 바라보고 살던 때에 문득 어머니의 손등에 피어난 저승꽃(검버섯)을 본 순간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불효하는 데 대한 뒤늦은 후회와 부끄럼이 들었다. 어머니의 검버섯은 젊음의 꽃자리에서 새로 피어난 꽃이었다. 저승꽃의 꽃말은 희생일까? 인내일까? 어머니가 몰래 피운 꽃이라 하나 이제는 어머니의 새 꽃을 나보다 더 오래고 진득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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