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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Ⅱ
 
이인주시인   기사입력  2018/12/11 [16:23]

제 손으로 키운 나무에 조롱을 매답니다
고통을 통과하고 가까스로 맺은 열매
꽃등 꺼뜨리듯 캄캄하게 때립니다

 

나무에게는 무슨 멍에입니까
소도 아닌데
다리를 건너고
천둥을 건너
이제 겨우 열매에 닿은 뿌리
벌레처럼 근질근질한 노역입니다

 

폭풍우가 잔가지를 꺾던 지난 밤
나무가 허공을 뚫었습니다
과일 맛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먹을 수 있는 자와 먹을 수 없는 자로 고요가 갈라졌습니다

 

과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수겠습니까
흘러넘치는 단물 말라붙게 만드는 탐욕의 꼭지는 파랗습니다
닿지 않아 복된 이름


여우의 조롱은 신포도 맛이 났습니까
노을이 번지는 과수원, 철조망이 없습니다
빛도 어둠에 먹히는 찰나
제 손으로 키운 나무가 십자가입니다

 


 

▲ 이인주시인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니 나무에 대해 발설하고 싶은 게 있었을 터다.
시인이 되면서부터 `나무`라는 인식은 시인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내가 심은 나라는 나무, 타자가 심은 나라는 나무, 내가 심은 타자라는 나무들이 나에게 드리우는 그늘은 음으로 양으로 가히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그 그늘로부터 은덕과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도망쳐 벗어나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 그늘의 양가적 합산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나무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나무에 대한 나의 탐구는 당연한 경도일 수도 있겠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와 성장의 관계, 나무의 얽힘과 배척에 관한 이야기, 나무의 열매와 가지와 잎새와 뿌리에 대한 노역과 경탄, 나무의 애증과 위무, 나무의 경배, 나무의 경쟁과 조롱과 질시까지, 그 얇고 두꺼운 음양의 그늘에 대하여 통찰하고 싶었던 걸 거다. 앞으로 나무의 연작을 쓰면서 나무의 역사와 가계에 대한 이야기와 통렬히 아팠던 나무의 시간에 대하여 말해보고 싶다. 누구나 자신의 나무 안에서 수용되고 해석되는 나무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한 갈피를 접어 넣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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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11 [16:23]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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