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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幻影)
 
마경덕 시인   기사입력  2018/12/12 [18:44]

 자정 넘어 집으로 가는 길
그 구름다리 곁, 어둠에 그을린 산동네 풍경
저곳은 밤마다 부엉이 울음이 날아오던 방향
달빛에 흔들리는 느티나무 그림자와 들새가 울다 간 흔적이 있다

 

하루 치 밥을 벌고 돌아가는 길, 멀리서 옛 부엉이가 날아온다
구름다리를 스치는 몇 초 동안,
저곳에 잠시 살았던 느낌
어둑하고 좁은 골목,
가난의 모서리에 질겨진 울음이 발을 포개고 있다
슬픔은 늘 이런 방식이었다

 

지친 마음에게
잠시 환영(幻影)을 떠먹이는 시간
막막한 어둠 속에 부표처럼 떠 있는 불빛을 내려서면
고물상 이불집 원조족발 호프집 24시 편의점…

 

실감 나는 저녁의 표정에
새는 멀리 날아가고
나는 무표정한 도시를 달리고 있다

 

기억의 마지막 오지(奧地)


나는, 저곳을 걸어 들어가거나
대낮에 환상을 바라보는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 마경덕 시인    

내 쓸쓸함에 동의한다. 이유도 맥락도 없는 까닭 모를 서글픔일지라도.
이 모호한 감정은 대부분 어스름이 내려앉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발생한다. 나는 충실하게 감정에 몰입한다. 조금은 서럽고 조금은 아픈 그런 데자뷔 같은 기억들 사이에 목을 잃고 줄지어 서 있는 해바라기와 마른 수수밭을 헤집고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가 들어있다. 저녁밥을 짓는 아궁이와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의 굴뚝, 삭정이가 타는 냄새, 한가하고 가난한 풍경은 모두 슬픔의 협력자들이다.

 

이 누추한 슬픔을 사랑한다. 더는 슬퍼할 것이 없다면 나는 얼마나 불행할까. 감추고 싶은 것들을 이제 들켜도 좋을 나이, 무언가 앓을 것이 더 있다면, 뼈가 저리도록 그리운 것이 있다면 한동안 행복할 것이므로. 슬픔의 주성분은 숲의 뼈가 타는 냄새, 냉갈(연기) 냄새이다. 까맣게 그을음이 앉은 부엌과 수없이 다녀간 가난한 저녁들, 갈 수 없는 곳,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일찍이 슬픔과 친해야 했다. 하여 간절함이 자랐다.

 

그토록 갖고 싶던 한 켤레의 살색 스타킹, 동아전과, 동아 수련장, 내게 간절함은 체념과 것과 같은 말이었다. 체념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말임을 오랫동안 비밀로 묻어두었다. 그 결핍을 사랑한다. 그 힘으로 억울한 일을 만나도 버틸 수 있었다. 내 몫이 아니어서 슬펐지만, 그 슬픔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다. 결핍이 가르쳐준 것은 기다림이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나는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하랴. 설령, 기쁨이 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기다림이 있기에 또 일어설 수 있으므로. 귀뚜리울음 같은 이 서글픔에 기대어 시를 쓴다. 수시로 들이닥치는 막무가내인, 내 몸을 관통하는 쓸쓸함에 동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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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12 [18:44]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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