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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지켜라
 
송용탁 시인   기사입력  2019/03/20 [15:39]

야경을 보기 위해 잠시 뇌는 꺼 둡니다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새 머리가 한 뼘이나 길었습니다 옆에 앉은 달이 자꾸만 파도를 끌어당기고 뇌리에 출렁이는 물결도 곧 펴질 듯 합니다 어깨에 앉은 밤나비의 날개를 반으로 접었더니 그림자가 두 개나 되었습니다 나는 밤을 구경하러 와 놓고 자꾸만 불빛만 보고 있네요 뇌가 없는 감각은 이토록 편식만 합니다

 

 다시 왕성한 식욕의 뇌가 눈 부비고 일어나 밤의 횡경막을 더듬습니다 나를 소화시킨 위장의 둘레가 궁금해 손가락 마디로 밤을 읽어갑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오래된 주름이 측량을 방해하네요 차라리 손가락을 잃고 싶습니다

 

 마디가 사라지면 밤의 골격이 만져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디가 하나 모자란 엄지는 나를 닮았기에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부끄러운 마디가 습관처럼 잠든 뱀 머리 주변을 서성입니다 잘려 나가지 않은 얼굴도 하나쯤 있어야겠습니다

 

뱀은 고집만 있고 얼굴이 없습니다 고개들어 밤을 두리번거립니다 숨구멍을 찾는 건 아닙니다 거짓으로 사랑하면 시체냄새가 나기 때문이죠 손가락처럼 잘릴 마디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얼굴은 늘 착하게 살고 뱀은 휘파람을 잘 붑니다
 
풍선처럼 바람을 붑니다 밤이 뚱뚱해지고 빛나는 먼지들이 끈적끈적합니다 숙련된 여자의 입술이 생각나고 결국 생각이란 걸 하다가 뱀의 대가리가 피를 토하는 꿈을 꿉니다 볼을 꼬집어보고 안도하는 얼굴입니다 뱀이 허물을 벗고 잠든 나를 깨웁니다

 

나는 아직 얼굴입니다

 


 

 

▲ 송용탁 시인    

시는 언제나 `나`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의 화두는 변해왔으나 근원은 에고(ego)의 고향이다. 언제부턴가 `나`에 대한 탐구는 조심스러워지고 주변의 시선만 쫓고 있다. 내 생활의 90%는 페르소나(persona)임을 느낄 때 시도 역겨워진다. 뱀은 내 안의 악마일수도 어쩌면 에덴의 논리에 희생된 진실일수도 있으나 본능은 늘 순수하다.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악마여도 좋다. 가벼운 연민이나 해보지도 않은 사랑 따위 가식은 전염병과 같다. 그래서 요즘 시들이 비슷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백신이 필요한 시대에 나는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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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20 [15:39]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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