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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어느 저녁
 
이화영 시인   기사입력  2019/05/08 [15:21]

꽃이 온다
저녁이 와도 우리는 흩어져 있었다

 

식탁에는 아무것도 없고
없는 것보다 많은 식탁보 레이스는
낡은 자세로 공기방울처럼 가볍게 흔들렸다

 

거실의 사물들이 표정 없이 어두워져갔다
사료를 씹는 고양이 소리가 부럼 깨는 소리 같아
의식을 치르듯 무릎을 끓었다

 

익명의 첫 문자를 칼질하며
어디로 튈까 망설이는 기울어진 5시

 

바람이 베란다 창문을 흔들고
깨진 화분조각 흙속에 고양이 발톱이 찍혀있다
지문을 남기는 도발적 메세지를 해독하지 않았다

 

도화선 같은 불빛이 거리에 흐르면
집들은 대개 비슷하게 행복하거나 조금씩 다르게 불행하다

 

우유 마우스 소주 삼겹살 공기밥과
강남역 10번 출구는 같은 맥락이다
치아를 닮은 사탕을 사면서 꿈이 없기를 바랬다

 

담장 너머 백일홍은 오늘도 답장이 없다

 


 

 

▲ 이화영 시인    

모든 것이 지워지고 사라지기를 바랐다. 영원이라는 말은 지루해서심장이 뛰지 않는다. 계절은 한층 짙어가고 옷차림은 가벼워지는데 나는 더 서늘해지고 싶었고 빗장을 걸었다. 그 중에도 피의 흐름은 빨라졌다. 내가 무거워질수록 사물들은 공기방울처럼 흔들렸다. 인정욕구와 호명에 환호하는 무리를 빠져나와 공간을 채우는 분홍 낱장을 응시하는 날들이었다. 침묵과 관조를 요구하는 저들의 답장은 생생하게 아프고 때론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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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8 [15:21]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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