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무너지는 마을 있다 반쯤 감긴 눈으로 그 마을 들어간다 흘러내린 산등성이마다 웅덩이들 물 없이 흩어져 있다 돌리네 소리없이 무너져 내린다 할머니 홀로 지키는 마을 브라운관 조금 흔들린다 저 마을 본 적 있다 눈을 아주 감고 그 마을 들어선다 봉긋한 젖무덤이다 내가 독차지해 버린다 너무 낡아 무너져 내릴 때 나는 그 마을을 버렸다 거기 어머니가 있었다
*돌리네 : 지하수에 의해 침식된 웅덩이
뭐 대단한 곳으로 온 것도 아닌데 나는 고향을 훌훌 떠났다. 뭐 대단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닌데 나는 부모님을 훌쩍 떠났다. 허나 바삐 살다 보니 그런 사실을 잊고 지낸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세상사 다 그런 거 아니냐며 위안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파트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새들이 귀소를 서두는 저녁 무렵, 무턱대고 나만 고향을 버린 자책감에 잠긴다. 이 세상 모든 불효를 내가 다 짊어진 것만 같다. 이제 내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커서 나도 곧 빈집만 남아도는 낡은 고향이 될 것이다.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 아직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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