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원 둥근 태양의 무늬를 등에 지고 깊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왔어요 수천 년 전, 암석에 기원했던 겹겹의 무량한 주술이 내 몸에 새겨진 줄 까맣게 몰랐어요
세속과 신성의 경계 사이를 주제하는 제사장의 권위였던 생을 지나 태양계만큼 넓고 긴 시ㆍ공간을 지나 몇 겁의 전생에 전생을 지나 빗살무늬 기하학적 세문이 새겨진 청동거울의 기억을 지닌 채 파경 되지 않은 온전한 명경으로 환생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이 거꾸로 읽히는 나는 나를 관통하여 다른 세상을 다녀오는 당신을 볼 때마다 당신의 진심까지 곡해할까 두려워요 텅 비어 공허한 내 연민을 당신은 알 리 없고 당신의 뒤꿈치를 붙잡을 방법이 없어 쓸쓸하고 쓸쓸해요 내 존재의 의미를, 그 주술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나는 내세의 동굴 벽에 당신을 묶어두고 싶어 자주 청동의 얼굴을 반짝반짝 닦아요
비 온다. 결별의 몸매 황홀하여 모든 꽃은 다 슬프다. 사랑하고 그리운 것들은 모두 내게서 안드로메다 성운만큼이나 멀어져 갔다. 삶에서 사랑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청춘의 봄날을 눈물로 다 보냈을 지라도 아직도 나는 사랑에 목마른 꽃사슴이다. 비애 롭다. 꽃이 그리운 오늘 빗소리를 견디며 종일 시를 쓴다. 꽃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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