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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김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9/06/02 [15:30]
▲ 김순희 수필가    

고향은 요즘 모내기가 한창이다. 이맘때 늘 그래왔지만 사실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변화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진달래 피고 뜸북새가 울 때면 고향 들녘에선 품앗이로 모자란 일손을 서로 거들었다. 언제부턴가 봄을 맞는 고향 풍경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서로의 일을 도와가며 짓던 농사일은 집집마다 그 일이 반으로 줄거나 아예 사라진지 오래됐다. 고향집 역시 반 이상의 농사일이 줄었다. 일 년에 몇 번 오남매가 모여 짓던 농사가 반으로 줄어드니 그 만남의 횟수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변하는 것이 아마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오남매의 만남은 농사를 짓는 것에서부터였다. 또 그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나의 유년은 꽃피는 봄이 되면 앞산마다 진달래가 붉어질 때, 산 밑에서 모내기 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기억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립다. 아주 가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머리에 두건 두르고, 허리 굽혀가며 모를 심던 그 모습이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한 줄 모를 심고 못줄을 옮길 때마다 양 쪽에서 지르던 그 소리가 그립다.

 

모내기 하는 날,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그 못줄을 빼서 옮겨주며 이쪽에서 `어이` 하면 맞은편에서도 `어이`했던 그 구호가 그땐 낯설었지만 지금은 애틋함으로 남아 있다. 흥얼거리며 모를 심어가던 아주머니들은 지금 이 세상을 떠났거나 어머니처럼 굽은 등허리를 두들겨가며, 신세 한탄 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그때의 아주머니들이 막걸리 한 잔에 흥겨워 춤을 추면서 해가 서산으로 갈 때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억척스런 아낙네 모습이었건만 지금은 기억 속에 머물고 있다. 아주 오래된 추억이다. 내 삶의 작은 버팀목 같은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풍경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농사짓는 것에 관심이 없다. 굳이 힘들게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예전 부모님의 시대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 같은 삶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점점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방황할 때가 많다. 적어도 유년의 어린 내게 비춰진 부모님은 육체적 노동이 전해주는 삶의 고달픔은 있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그러면서 서로 정을 나누었던 소소한 행복들은 늘 존재했었음을 안다.

 

가진 게 많지 않지만 나눌 줄 알았고, 품앗이의 일손이 가장 큰 재산이었던 그때의 소중함을 알았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때의 행복함을 감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지난 휴일, `어이`를 외쳐대던 어머니는 논두렁 한 귀퉁이에 앉아 계셨다. 이앙기가 모를 찍어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거의 절반이 줄어든 모내기를 서너 시간 만에 끝내고 있을 무렵, 어머니는 굽은 허리로 하염없이 모내기가 끝난 논을 바라보셨다.

 

이앙기가 미처 지나가지 못한 빈 곳까지 모를 심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어 메꾸었던 지난해와는 달리 안타까운 얼굴로 그저 바로보고만 계셨다. 이제는 농사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았다. 평생을 해왔던 일인데 쉽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머니는 자식들이 돌아간 후, 비어 있는 곳곳에 남은 모를 심을 것이다.

 

그래왔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과거 삶에서 이제는 잊고 싶을 만도 한데 어머니의 그 고달픈 삶의 부분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마 살아가는 의미가 고달픔보다 더 소소한 행복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늘 오늘 같을 수는 없지만 그때의 그 풍경 속 추억들은 아마도 내 삶의 긴 여정에 오롯이 남아 나를 자극하게 할 것 같다. 지금 이맘때만이 볼 수 있는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이 오늘따라 더 그리운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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