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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발걸음
 
장주연 서울 성수고 교사   기사입력  2019/07/01 [15:38]
▲ 장주연 서울 성수고 교사    

"하나님,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양보 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마~ 내 기도가 끝나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말했다? 양보는 네가 옆으로 가고 싶으면 옆으로 가고, 앞으로 가고 싶으면 앞으로 가는 것처럼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고. 양보는 하나님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하는 거라고 하셨어." 얼마 전 우리집 둘째 예진이에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 한명씩 기도해 주는 일과를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예진이가 혼자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한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도해 주고 나온 후, 필자는 밖에서 예진이 기도 소리를 들으며 "양보는 지 스스로 하는건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하나님이 예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예진이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했다. 둘째 아이는 자기중심적인데다 개성이 넘치고 남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가 지나치게 강한 아이다보니 역시나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유치원에서 한 일을 물어보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고, 무었을 그렸다는 등 주로 과업 중심으로만 대답을 한다. 같은 유치원 생활 3년차인데도 베스트프렌드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선생님"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곤 한다.


우리 부부가 예진이의 사회성 부족에 대해 걱정하던 차에 아이가 양보하지 않고 자기 뜻만 고집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양보하라고 집에서 가르치기 시작한지 몇 일 안 되었을 때 예진이가 하나님께 양보하게 해달라며 기도했던 것이다. 그 결과 양보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하나님께 자기 할 말만 쏟아내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는 것 같다. 이후 아이 아빠는 "이제 걱정이 안 된다"라고 했고, 정말 놀랍게도 예진이의 유치원 교우관계가 날로 좋아져 예진이와 친구하겠다는 아이, 예진이랑만 놀겠다는 아이가 생겨났다. 그 후 집에 오면 오늘 무슨 양보를 했는지, 친구들과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 말해주었다.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가끔 떼쓰곤 했는데 이제 그런 일도 없어졌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니 유치원 생활이 즐거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사회성이 갑자기 180도 변한 건 아니다. 이번 여름 5주간 진행되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를 새로운 환경에 보냈더니 다시 아이의 문제점이 불거졌다. 하루는 친구가 그려준 그림을 구겨버리기도 했고,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필자와 씨름하기도 했고, 선생님에게 말이 아닌 울음으로 자기 뜻을 표현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벌써 3주를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어린시절 교우관계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주도적으로 친구관계를 이끌었던 터라 내 아이의 이런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문제아 엄마가 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진정 잘못된 문제 행동일까? 욕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것처럼 못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잘못된 행동이라면 아이를 호된 훈육으로 고쳐야 하겠지만 양보하지 않는 등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가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 아이의 특성이거나 아직 덜 발달하여 부족한 점이라면 그것을 잘못으로 바라보는 내 시선부터 고쳐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리 자식이라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아이를 본인의 어린 시절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엄마 욕심으로 아이를 새로운 환경에 던져놓고 원만한 교우관계나 주도적인 태도, 심지어 대단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잘못 아닌가. 아이 문제로 나의 자존심을 운운하는 것은 아이를 나의 트로피로 이용한다는 뜻이 아닌가. 언제나 부모의 후회는 깊고 느리다. 내 탓을 아이 탓으로 돌리며 기어코 아이에게 상처를 준 후에 회개가 일어난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마다 개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필요한 교육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와 비슷하다고 해도 내가 아닌 고유한 존재인 아이를 그 아이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 비추어서 판단해도 안 되고, 내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이의 늦은 발걸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조바심 내며 아이를 채찍질해선 안 된다. 아이의 느린 발걸음을 기다려 주지 못해서, 아이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이를 혼내고 있다면 그것은 훈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우리도 느리고 지진한 발걸음으로 여기까지 걸어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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