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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퇴근시간에 맞춰 고등어 한손 든 검은 비닐봉지 흔들며 한 발은 하얀 고무신 한 발은 양말바람으로 돌아올 테지만
중풍으로 몸 오른쪽 왼쪽이 따로 노는 엄마는 날개 활짝 펼친 공작새를 그리며 오늘도 화려한 외출을 꿈꾸는 것이다
어머니가 지금의 내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졌다. 여러 달 입원 치료에도 몸의 반쪽 운신이 불편해져 갇힌 듯한 나날. 햇살 찬란한 바깥 세계는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막내딸의 식사를 챙기려는 모성과 공작새를 그리며 매무새에 신경 쓰는 여성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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