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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안중욱 울주군 삼남교회 목사   기사입력  2019/07/07 [15:31]
▲ 안중욱 울주군 삼남교회 목사    

최근 다큐 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을 왔습니다. 그러나 단란한 가정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들 한 명을 남편삼아, 아들 삼아 살면서 아들을 삶의 존재 이유처럼 키웠습니다. 모진 가난과 환란의 세월에서도 할머니는 오직 그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견디어 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40고개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를 버려두고 홀연히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약 40년 가까이 할머니는 아들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아들을 가슴에 품고 험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잠들기 전에 매일 사진 앞에 가서 "아들아, 오늘도 별 일없었지, 잘 자거라" 하고 말을 건냈습니다. 아침 일어나서도 "아들아, 잘 잤니? 오늘도 아프지 말고 잘 살아라" 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읍내 장에 가서 새 옷이라도 한 벌 살라치면 아들 앞에 가서 "오늘 에미가 이런 옷 한 벌 사왔다"고 말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늘 사진 속의 아들에게 "아들아, 에미가 되어 오늘은 우리 아들 보기에 많이 미안 하구나"하면서 할머니는 눈물로 사과하고 힘겨운 삶의 자리를 굳세게 버티어냈다는 것입니다.


둘째 내용은 월남에 파병됐다 돌아온 어느 군인의 사연입니다.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마을 이장에게 찾아가 부탁해서 자기에게 보내 준 편지 한 장. 그리 길지 않은 짧은 편지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아, 부디 몸 건강해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마디 말이 그 병사에겐 눈물이 되었고 가슴속 에너지를 확 이끌어내는 피뢰침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 노병은 월남 파병에서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의 그 편지를 꼬깃꼬깃 군복 깊숙이 가지고 다니며 고향생각, 어머니 생각만 나면 꺼내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귀국 직전 전투에서 어머니 편지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애통했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묵직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최근 사건사고 소식 중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청첩장을 찾아오는 길에 역 주행하던 차와 추돌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을 덮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어는 젊은이는 결혼을 앞두고 예물을 찾아오던 중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처럼 결혼하기 힘든 시대에 결혼식을 앞둔 청년들이 저렇게 안타깝게 스러졌다는 소식들은 가슴을 후비며 파고 들어옵니다.


마을 가까운 곳에 울산시 교육청이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애용하는 소중한 곳입니다. 들러볼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열람실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2층 한 쪽에 취업 준비생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거기서 `취업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 중 실업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관할 기관에 나가야 할 분이 있으면 차를 태워드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기관에 갈 때마다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20-30대 젊은이들도 제법 눈에 띕니다.

 

그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확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돌아보니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품고 40년을 살아낸 할머니처럼 `힘 내거라, 미안하다"며 격려하지 못한 부족함이 가슴속에서 밀려옵니다.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고 충고하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라고 인구절벽이니 교육과 산업현장의 이런저런 난맥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어설픈 사람이었습니다. 학교 교육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40%나 되는 교육 공무직 종사자들이 3일 동안 파업하는 모습을 봅니다.

 

동물국회니 식물국회니 하던 중 어렵게 소집된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들이 행하는 연설을 들으면서 여기저기 묻어나오는 아픔과 갈등과 고민들을 만납니다. 자손들 걱정에 힘들어 하는 우리 마을 어르신들도 매일 만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간접으로 만나는 갈등과 아픔의 사연 당사자들에게 공감은커녕 따듯함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충고, 평가, 조언을 하기는 쉬워도 조건 없이 매일 보듬고 안아주고, 가슴 속 외로움, 아픔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소통하고 나눔이 그렇게 소중함을 알지만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며 힘겹게 자기 자리를 찾아다니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우리는 언제 햇살처럼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그리고 따뜻한 눈빛을 보낼 수 있을까요. 그들이 멀리 가서 힘들 때면 언제라도 이 땅에 돌아와 태화강 십리대밭을 거닐거나 동구 몽돌 해수욕장에서, 대왕암 푸른 솔밭에서, 간절곶 푸른 파도소리에서 힘을 얻고 다시 몸을 추슬러 돌아가는 울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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