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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마무리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19/07/17 [15:24]
▲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어설픈 어깨너비의 교복 겉옷을 입고, 옷에 파묻힌 듯 앉아있던 1학년 새내기가 어느덧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세상에 이렇게 경직되어 시험을 쳐본 적이 있을까. 긴장되고 어려운 두 번의 지필 시험을 끝낸 기말고사 후의 학생들 표정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이다. 이 시기에 학생들과 꼭 함께하는 것은 수업의 마무리 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본 수업의 마무리 내용은 `내가 생각하는 정진희 선생님은` `선생님과 한 수업 중에 가장 인상적인 수업은` `선생님의 가장 좋은 점은` `선생님에게 바라는 점은` `앞으로 어떤 수업을 하고 싶나요``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등 이다. 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학생들과 함께 17주간의 수업을 정리하여 공유해 본다. 240명의 학생은 첫날 선생님과 첫 만남과 동시에 빙고를 통한 자기소개를 하였다. 우선 처음 만난 친구들의 이름을 빙고 칸에 가득 쓴다.


빙고 게임이 시작되면, 친구의 특성을 기억했다가 맞춘 학생은 빙고 칸을 동그라미를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세 줄 빙고!`를 외치는 친구에게는 큰 박수와 동시에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초대박 특권이 주어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서로 빙고 칸을 채워 1등을 하기 위해, 그리고 어떤 친구들인지 기억을 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두 번째 시간부터는 학생과 교사, 서로 간의 래포를 형성한 후 `국어 교과`의 `품사` 수업을 시작하였다. `중학교 입학 직후, 국어의 품사 체계를 배워야 한다니. 너무 무리 아닐까`하는 생각에 입학 전부터 끝없는 고민 했던 것 같다. 가장 재미있고, 잊히지 않는 문법 수업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문법 체계를 설명하기 전에, 학생들이 스스로 지금 생각나는 단어들을 포스트잇에 모두 적게 하였다. 수 십개의 단어들을 칠판에 붙여 알록달록한 포스트잇 꽃밭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쓴 단어를, 학생들의 힘으로 분류해보며, `명사, 대명사, 수사`의 체계를 알아가 보는 시간이다. 교사가 목이 아프게 말하는 수업이 아닌데도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포스트잇의 이동과정에 집중한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가 쓴 단어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가 쓴 벚꽃은 그럼 명사예요?" 라며 자신이 쓴 단어를 쫓아, 스스로 단어의 품사 자리를 잡아주고 나면, 마치 엄마라도 된 듯 보살피고 아껴주는 그 표정이 얼굴에 번진다. 이어지는 내용은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등의 특징이 담긴 가사를 만들어, 트로트 음에 따라 부르는 `품사 송` 수업이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부르는 트로트에 품사의 모든 특성이 다 들어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학생들과 진행된 17번의 수업은 모두 이런 식이다.

 

20년 전, 교실에 앉아있던 내가 듣던 수업과는 거리가 있다. 학생들은 해가 갈수록 독립적이고 자기 의사 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더는 수동적이라는 단어를 감히 비할 수 없을 만큼 적극적이다. 모든 수업은 스스로 그려보고, 만들어보고, 스스로 사고하는 힘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일까. 학생들과 수업을 마무리하며 가장 좋았던 수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무려 90% 이상이 같은 응답을 보였다. 스스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언어의 훼손`에 대해 발표해보는 수업이었다.

 

언어 훼손에 관한 자기 생각을 매체로 멋지게 만들어서, 많은 청중 앞에서 큰소리로 그럴듯하게 발표해보는 수업.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경청하며 들어본 수업. 의아했다. 더 많은 재미있는 수업이 있었는데, 이 수업을 콕 찍어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생들의 설명은 대체로 비슷했다.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수업이었어요.`, `친구들이 만들어오는 파워포인트가 다 달라서 재미있었어요`, `친구들한테 배우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등이었다.

 

이 결과를 받고 나니 2학기 수업 틀을 잡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는 수업, 교사는 조력을 해주는 수업이 바로 그 답이다.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진 학생들, 인기 예능 프로그램조차 주말에 시간을 기다려 보는 세대가 아닌, SNS에서 가장 웃기고 자극적인 부분을 편집본(은어: 짤)으로 접하는 학생들이다. 수목극을 손꼽아 기다려, 그 시간에 `본방 사수`를 하는 내가 그들의 시선에 다가가고 싶다. 또한, 수업으로 옮겨와 이들의 시선에서 배움이 잘 일어날 수 있는 수업을 구성하기 위해 오늘도 골똘히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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