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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회> 서울
기사입력  2019/07/28 [15:49]   정성수 시인

가리봉동 봉제공장에 다니는 맹순이와 춘자가
오늘은 월급도 탔겠다 영화 한 편 때리고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골목식당으로 갔다.
메뉴판을 훑어보며 주머니 속을 계산하던
맹순이는 곰탕 보통을 시켰고 춘자는 갈비탕 보통을 시켰다.
주문을 받은 늙은 여자주인이
통금이 다 돼가는 이 시각까지 귀때기 새파란 년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냐는듯이
눈을 내리깔더니 주방에 대고 소리친다.
-여기 십 번 테이블, 곰보하나에 갈보하나-
이 말을 듣던 맹순이가 갑자기 질린 얼굴을 하더니
-귀신이네. 나야 얼굴이 곰봉게 곰보지만 춘자 니가 갈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다냐.
밥을 먹고 골목을 빠져 나오는 맹순이와 춘자는
눈뜨고도 코를 베 간다는 서울이
등 뒤에서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 정성수 시인    

가리봉동은 1964년 수출무역단지인 구로공단이 생기면서 형성됐다. 70&#8228;80년대는 꽃다운 10대~20대 근로자들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공장생활을 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아왔던 재중교포들의 숱한 애환이 서린 곳이다. 서울에서 가장 싼 방값에 출입문이 사방으로 뚫려있어 24시간 출입이 가능한 개방적인 독특한 구조는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야 하는 이방인들에게 더 없이 좋은 조건이다. 여기에 편리한 교통 조건이 재중교포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자녀 교육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리봉동을 찾은 재중교포들. 그들의 목적과 동기는 우리의 과거와 많이 닮아 있었다. 국적도 다르고, 조건도 달랐지만 함께 꾸는 꿈이 있었다. 과거에 우리가 머물렀던 같은 집과 같은 방을 쓰면서, 우리가 걸었던 거리를 걸으면서 꾸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가족`이었다. 가리봉동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품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가리봉동은 꿈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넓고 큰 품으로 안고 있다. 가리봉동에 뜬 달은 춥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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