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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칼
 
이성목 시인   기사입력  2019/08/07 [16:26]

밤새 나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깨어나지 않을 참입니다. 바람대로라면 당신 혓바닥에 올려놓을 얇은 꽂잎 한 장이지만 나는 나를 두드리는 사람을 믿지 못합니다. 전생에 그는 나를 오래 두드려 새파란 낫을 건져갔던 사람입니다. 낫에 잘린 꽃들을 애도하기에 늦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피 냄새나는 꽃들의 후생으로 내가 가서 어떤 날끝에도 잘리지 않는 꽃잎 한 장 세상에 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다시 두렵습니다. 두려워 지금도 불을 견디고 망치질을 견딥니다. 한때는 저 소리에 깨어난 쇠스랑이 하루 만에 손가락이 잘려 돌아온 걸 보았습니다. 이빨이 다 망가진 도끼도 보았습니다. 늙어 고부라진 꼬챙이도 있었지만 아무도 원했던 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용광로 속에서 전생의 기억을 다 지우고 내 곁에 누워 있는 지금 번번이 잠들고 번번이 깨어나는 아침이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쇠붙이로 가득찬 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깨어나지 않을 참이지만 대장장이는 내 속에서 무엇을 건져냈을까요. 아 억겁이 쇠의 굴레라지만

 


 

 

▲ 이성목 시인   

이성목의 우화는 제목을 보아야 그것이 우화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을 정도로 현실과 밀착되어 있다. 그의 우화에서 사물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로 바로 쏟아져 들어온다. 화자는 우화→현실의 위계에 구멍을 내고 투과성을 최대한 높임으로써 우화가 현실을 규정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의 화자 역시 인간의 상태에서 사물-인간의 겹 존재(double being)로 순식간에 변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서 우화와 현실은 순서나 단계가 아니라 동일성의 상호 내주(페리코레시스, perichoresis) 상태가 된다. 그것들은 동일한 본질의 다른 두 얼굴이며, 서로 겹쳐지면서 동일성의 밀도를 극대화한다. 위시는 시스템의 폭력아래 놓여있는 개체와 "대장간 칼"을 바로 등치시킴으로써 시스템이 멀리서 개별 주체들을 제어하는 추상적인`환경`이 아니라 살갗을 파고드는 "새파란 낫"과도 같은 것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시스템의 이 끔찍한 직접성은 사물(우화)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사물들을 끌어들이는 모든 시들은 사실상 넓은 의미에서 우화에 가까이가 있다. 시는 개념이아니라 물질(사물)로 세계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에 저항하는`미적 주체`를 "어떤 날 끝에도 잘리지 않는 꽃잎 한 장"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대장간이라는 사물 세계의 맥락이 없이는 성취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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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07 [16:26]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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