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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4)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기사입력  2019/08/07 [16:29]
▲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한마디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교의 전문가다. 누군가 그에게 "키가 크시네요."라고 말했다면 그는 필시 "누구보다? 성인의 평균 키보다? 아니면 상위 10%에 들어갈 만큼?" 하고 반문할 사람이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제자들과 함께 158개나 되는 나라의 정치 체제가 갖는 특징을 자세히 조사하고 비교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가 전개한 정치 체제의 풍부한 유형론이나 매우 현실적인 실천론은 모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비교를 통해서 얻은 성취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정치학`이야말로 비교 연구의 놀라운 매력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의사도 아프면 다른 의사를 찾듯 정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도 다른 정치 체제를 통해 더 잘 조명될 수 있다. 흉악한 강도도 자신이 다른 강도의 피해자가 되길 바라지 않듯 스스로의 문제점을 돌아볼 수 없는 정치 체제는 없다. 신발을 신기만 하는 소비자도 좋은 신발을 구별해 낼 수 있듯 완전한 하나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듯 정치 체제에서도 언제나 옳은 하나의 정의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최선의 완벽한 인물이 지배하는 체제에 대한 허망한 기대를 버린다면 아마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들 사이에서 `비교적` 큰 문제 없고 `비교적` 실패할 가능성이 덜한 체제를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히 그런 성격의 정치학을 지향했다. 불완전한 부분들이 상호 의존적이면서도 동태적인 균형을 찾아가도록 하는 정치적 기예랄까, 가능성의 예술을 그는 기대했다.

 

지식인들 가운데 현실 정치와 관련해 의견을 말할 때면 싹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발본적 변화 없이 희망이 없다는 논변을 습관처럼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들에게 기대할 것이 있냐는 투의 냉소적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은 완전한 정치를 꿈꾸고 있군요. 그런 날이 올 거 같습니까? 그런 정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변화를 찾으려는 노력을 중단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총체적 재편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속한 부분 체제들 속에서 바꾸고 개선할 일은 많습니다. 부분들 사이의 불균형한 변화가 누적되어야 언젠가 전체의 변화도 가능할 거라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게 인간의 정치에 합당한 이해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혁명과 내전을 혐오하는 정치학"이라는 일종의 보수적 해석 쪽으로 치우쳐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에게 총체적 변화나 완전한 사회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다.

 

동시에 정치 체제가 내전 상태로 퇴락해 시민들 사이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다른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능력한 통치자, 시민을 분열시키는 무책임한 정치가를 혐오했고, 오만한 독재자를 경멸했다. 그보다는 현 상태라도 잘 유지하는 온건한 평화론자를 더 선호했다. 확실히 그는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개혁론을 대표하는 정치학을 펼쳤다. 하지만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로부터 배척받았다. "어떤 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이 자연이다"는 그의 견해로는 기독교적 기적을 정당화할 수 없었다.

 

완전한 국가에 대한 열망에 벅차 있어야 할 신도들에게 그의 `정치학`은 "그건 헛된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13세기 토머스 아퀴나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복권되기 전까지 기독교 안에서 그는 불경스러운 존재였다. 정치학의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가진 위험함을 고발한 최초의 사람은 17세기의 토머스 홉스였다. 홉스가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왕의 시해를 정당화하는 공화 정부의 위험한 교의"였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고, 무엇이 정당한 질서인지에 대한 질문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정치이고 무엇이 좋은 시민의 덕목인지를 끊임없이 따지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따라서 공화정부나 민주정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불온한 정치관을 확산시키는 주범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곤 한다.  혁명적 이상주의가 현실에서는 별 위협으로 여겨지지 않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정치학은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기에 때로 위험시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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