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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앞에서*
기사입력  2019/08/20 [16:42]   박민서 시인

벽에 찍힌 손바닥은 붉은 비명이다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천천히 시드는 비명, 동여맨 손목들, 실핏줄처럼 아주 느리게 담을 넘고 있다
 
지문 없이 찾아갈 수 없는, 먼 시대를 떠돌고 있는 언어, 손가락마다 불꽃을 달았다 벽을 밀어내고 있는 기원이 종유석처럼 자란다 말이란 다 자라지 않으면 더듬거리는 법이다
 
손을 맞대는 것으로 만날 수 있는, 벽은 얼마나 오랜 연대가 시큰거리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는 그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흘러가는 지문들이었을 뿐
 
동굴처럼 웅크리고 있는 부족
손목을 관통하고 있는 터널
 
명칭을 나누어 가진 관계가 있었다면 한 손목을 잡고 위로하는 다른 손목을 볼 때도 있지, 손톱이 자라지 않는 손바닥 벽화, 마주보지 않고서는 손을 맞출 수 없어 여전히 벽을 향해 있다 두 번 다시는 접지 않겠다는 맹세를 보았다
 
온갖 말들이 들락거리는 관절, 말은 모두 벙긋거리며 동굴을 지나친 것들이어서 악담과 정담이 함께 있다
 
며칠 악담으로 시큰거리는 내 손목이 아프다

 

* 스페인 북부 지역의 카스티요 산에 있는 동굴 속 채색벽화.

 


 

▲ 박민서 시인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게이트를 찾지 못해 티켓을 보여주며 역무원 팔을 잡고 뛰었던 적이 있다. 주어진 시간의 긴장이 절박했다. 시간은 연속이지만 꼭 통과해야 할 시점이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횡단열차는 다른 문화와 떠돌고 있는 언어를 나의 시의 세계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자 달렸다. 신축성 있는 언어의 그림을 그려보고자 내 손목을 통과하는 다른 세계로 내 한 편의 시를 갈무리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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