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희 현대중학교 교사

20년 전, 흑백의 두껍고 투박한 국정 교과서는 이제 도서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옛날의 흔적이다. 요즘은 표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선명한 색채로 `이렇게 예쁜 것이 교과서인가?` 싶을 만한 교재로 수업이 이뤄진다. 심지어 출판사 별로 단원이며 텍스트가 모두 달라, 학교에서 선택한 교과서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업 내용이 달라지는 `검인정 교과서` 체제인 것이다.

이 각양각색의 교과서를 다시 전국 수천 명의 국어교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국어 수업을 진행하니, 과연 똑 닮은 수업이 교실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학생들의 배움의 기준을 안내하는 과정에 바로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은 시기마다 필요할 때 개정되거나, 새로 만들어지는데 현재 중학교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점차 적용하고 있다.

뉴스나 여러 매체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자유학기제나 문과, 이과 통합 등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쟁점인데, 그중 가장 매력적인 교육과정 중 한 꼭지가 바로 `한 학기 한 권 읽기`이다. 다독(多讀)의 흐름에서,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 자신의 삶으로 독서를 포함 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이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를 펼쳐보면, 첫 단원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학생들은 스스로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읽을 계획을 세워보며 독서를 시작한다. 이어서 자신이 세운 계획에 따라 천천히,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 본다. 이 과정은 대부분 국어 시간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따로 특별한 시간을 기울이지 않아도 누구나 한 권을 마음속에 넣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친구들과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수다)도 하고, 책에서 나온 주제로 토론을 열어보기도 하며, 직접 책을 홍보하는 제작물을 만들거나, 북트레일러(책 홍보 영상)을 기획, 촬영, 편집하는 등 다양한 심화 과정을 통화여 소통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이 독서 및 소통의 과정이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학생들에게 오롯한 독서 몰입의 경험을 주기도 하는 등, 목적에 따라 책 읽기 방향은 달라진다.

수업을 진행해보면 처음에는 만화책이나 웹 소설을 기반으로 한 책, 혹은 가벼운 주제의 책을 들척인다. 그러다 몇 주가 흐르고 나서, 학생들이 책을 고르는 서가 곁으로 가보면, 상상 이상으로 책의 선정에 신중을 다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나에게 이렇게 책에 몰입하여, 책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적이 있던가. 학생들에게 적어도 한 주에 한 시간. 이런 경험이야말로 스마트폰과 각종 매체로 넘쳐나는 콘텐츠 속에 진정한 책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학생들이 꼭 읽는 책 중 한 권인 <어린 왕자>를 읽은 학생의 질문이 생각난다. "선생님. 어린 왕자가 원하는 게 길들여가는 거예요? 길드는 거예요?" 이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해줄 수 없는 것은, 책에서 꺼낸 한 꼭지의 질문은 쉽게 대답해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책에만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많은 길 중에서 책에도 답이 있음을 알 수 있는 현대의 학생들을 매일 만나고 있음에 감사하다. 그 옛날 여름 방학 과제로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편의 독후감을 쓰던 시대와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는 느낌이 문득 밀려온다. 지금, 당신은 이 뜨거운 하반기,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한 여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