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민속명절인 `추석`이다. 중국 또한 이 날은 4대 전통 명절 중 하나로 민족대이동을 하는 최대 연휴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추석`이라 부르고, 중국에선 `중추절(仲秋節)`이라 칭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중추절은 당나라(618~907) 초년에 시작됐지만, 우리의 추석은 그보다 훨씬 더 이른 신라 유리왕(?~ AD 57) 때부터 비롯된 우리나라의 자생 명절이다. 고래로 한자문화권 사람들은 음력으로 1~3월을 `봄`, 4~6월을 `여름`, 7~9월을 `가을`, 10~12월을 `겨울`이라 인식했다.
나아가 `예기ㆍ월령`에서는 가을 3개월을 3형제로 비유하여, 초가을인 음력 7월은 孟(맏 맹)자를 쓴 `맹추(孟秋: 맏가을)`, 중가을인 음력 8월은 `仲(둘째 중)`자를 쓴 `중추(仲秋)`, 늦가을인 음력 9월은 `季(막내 계)`자를 쓴 `계추(季秋)`라 불렀다. 그러니 `추석(秋夕)`은 당나라 시인 조하(趙嘏)가 지은 `장안추석(長安秋夕)`에서처럼 어느 가을날 저녁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음력 8월 15일 대보름 저녁을 뜻하는 `중추망석(仲秋望夕)`의 준말로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토속 고유한자어다.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가위`는 `가배(嘉俳)`에서 유래된 말로 알려져 있으나, `가배`의 `배`가 `위`로 변음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배우(俳優)`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俳(광대ㆍ잡희 배)`를 `優(광대ㆍ잡희 우)`로 바꾼 `가우(嘉優)`란 말 또한 추석을 지칭하는 말이다. 고로 `가우`에서 `가위`가 나온 것이라 볼 수도 있으나 그걸 뒷받침할 만한 기록이 없다. 그런데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 유리이사금조에는 이 `가배`와 관련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유리왕이 6부를 정한 뒤 이를 둘로 나누어 두 명의 왕녀로 하여금 각각 부서 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게 하였다. 그런 뒤 7월 16일부터 대부(大部)의 마당에 일찍 모여 길쌈을 시작, 밤 2경에 파하게 했다.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의 많고 적음을 따진 뒤, 시합에서 진 쪽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어 서로 더불어 춤과 노래 및 온갖 놀이를 하였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고 하였는데, 그 음조가 매우 슬프고 아름다웠다." 위 `가배`에서의 嘉(가)는 `즐겁다`를 뜻하고 俳(배)는 `광대, 온갖 놀이`를 뜻한다. 따라서 `가배`는 `즐거운 춤과 노래 및 온갖 놀이`를 가리키는 용어로, `가운데`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다. 조선 후기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 풍속 편에서 위 이야기에 더하여 "이를 가배회(嘉俳會)라 하였다.
즉,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면서 회소곡(會蘇曲)을 노래했기 때문에 이를 `가회(嘉會)` 놀이라 하였다."고 고증했다. 나아가 <사진>에서처럼 추석에 대해 "秋夕曰漢嘉會(추석 왈 한가회)"라고 적었다. 한가위의 유래는 신라 유리왕 때의 `가배회(嘉俳會)`의 준말인 `가회(嘉會)`에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秋夕曰漢嘉會(추석을 `한가회`라고 했다)"라고 증언했다. 즐겁고 융숭한 잔치모임을 가리키는 `가회(嘉會)`의 최초 출전은 한(漢)나라 때 가의(賈誼: BC200~BC168)가 지은 `치안책(治安策)`이다.
그러던 것이 신라 유리왕 9년(AD 32년) 때부터 `가배회`의 준말로써 음력 8월 15일에 한정된 즐거운 잔치모임을 뜻하게 되었다. 후에 `가회`는 `역어유회(1690)` 上 4에서 증명되듯 `가외`로 변음 되었다. `깊숙히`와 `깊숙이`에서처럼 `ㅎ`과 `ㅇ`은 같은 목구멍소리로써 서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가회`의 변음인 `가외` 앞에 `한밭(大田)`처럼 `큰`을 뜻하는 `한`이 덧붙은 `한가외`는 1929년 4월 1일에 발행된 잡지 `별건곤` 제20호의 `팔도장타령` 중, "팔월이라 한가외에 오레 송편이 조흘시고"에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 중의 `노로`가 오늘날 `노루`로 변음되었듯, `가외`는 `가위`로 또다시 변음되니, 추석의 다른 우리말 `한가회`는 `한가회→한가외→한가위`의 변음 과정을 거쳐 오늘날 `한가위`로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