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600년 지나 적중한 최만리의 예언`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1444년 양력 3월9일 최만리를 대표로 한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총 7명의 언문시행 반대 상소문은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대한 예찬으로 시작된다. "신들이 엎드려 살펴보옵건대, 언문 제작이 지극히 신묘하와 물건을 창조하고 지혜롭게 운용하심은 천고에 뛰어나시옵니다." 이어 그들은 "언문의 자형은 비록 옛 전문을 본떴다 할지라도 용음과 합자는 모두 옛것에 반하니(맞지 아니하니) 실로 근거할 데가 없사옵니다(諺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라는 매우 중요한 검토결과를 제시한다.
이 증언이 왜 중요하냐면,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관련된 여러 주장들, 예를 들어 신대문자ㆍ가림토ㆍ파스파문자 모방설 따위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명확한 판별기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위 문장에서 `용음(用音)`은 세종대왕께서 새로 만든 훈민정음 28자의 음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합자(合字)`는 초ㆍ중ㆍ종성의 글자를 합하여 하나의 표음자로 만든 것이다. 세종과 그의 신하들은 고대 `대전(大篆)`의 원류인 은나라 문자부터 진나라 `소전(小篆)`까지를 아울러 `고전(古篆)`이라 칭했다.
2012년 중화서국에서 발간한 `갑골문자편` 상권 231쪽에 나오는 은나라 `ㅂ(입 구)`자들의 모음 자형은 진시황의 진(秦)나라 소전체까지 `ㅂ` 또는 그와 유사한 자형을 유지하다가, 한(漢)나라 때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ㅁ`자 모양으로 정착됐다.
세종대왕은 은나라의 `ㅂ(입 구)`자에서 훈민정음 `ㅁ, ㅂ` 자를 취하되 발성기관의 소리를 관찰해 그 음을 달리 운용했다. 즉, 은나라 문자 `ㅂ`의 초성은 `g`음이지만, 훈민정음 `ㅂ`은 `b`, `ㅁ`은 `m`음으로 서로 나타내는 음이 완전히 다르다.고로 최만리 등의 소견은 "언문 28자의 자형은 고전에서 취해 자형 면에선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금께서 그 음을 사용한 것은 모두 고전과 일치하지 않아 자음 면에선 근거할 데가 없다"가 된다. 이에 자방고전의 `고전`을 `환단고기`에 나오는 `ㅂ`자 없는 `가림토`나 일본의 `신대문자`로 보는 시각들에 대해 위 상소문 중 "용음과 합자가 모두 옛것^고전과 맞지 않는다"는 증언으로써 그 진위 여부를 능히 검증할 수 있다. 환단고기에 실린 가림토 38자에도 `ㅂ, ㄷ, ㅌ, ㅋ, ㆁ, ㅎ`자가 없다. ㄱ과 ㆍ의 합자는 훈민정음 언해본의 글자와 같다. 최만리 상소문의 "用音과 合字는 모두 옛것과 같지 않다"로 검증하면, `古篆`이 아니라 후대의 위작임이 드러난다.
즉, 몽골 파스파문자의 경우 ‘ꡊ’(90도 우회전시켜 볼 것)은 우리의 `ㄷ`과 음이 같으니, 음이 모두 달라야 하는 `자방고전`의 `고전`이 아님이 증명된다. 일본 신대문자는 상당수의 자형이 훈민정음과 일치하며 그 음 또한 거의 일치한다. 고로 신대문자 또한 훈민정음의 `고전`이 아니며, 주장과는 반대로 훈민정음 창제 후 훈민정음을 베낀 후대의 것임이 입증된다. 가림토 38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중성 11개자는 훈민정음 11개 중성과 그 수와 자형 면에서 서로 완전 일치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27개의 글자는 모두 초성일까? 아니다. 붉은색 상자 안의 글자는 `ㄱ`에 선을 가획한 `ㅋ`이 아니라 초성 `ㄱ`과 중성 `ㆍ`의 합자이다. 그것은 훈민정음 언해본 중의 `가타니`의 `ㄱ` 더하기 `ㆍ`의 자형과 같다. 최만리 등의 증언대로 용음과 합자가 모두 고전과 달라야 하는데, 같기 때문에 가림토 또한 훈민정음의 기원인 `고전`이 아니라 후대의 위작임이 입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