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波紋의 향방
 
김인숙 시인   기사입력  2019/09/25 [18:40]

삶은 계란껍질을 벗기다 가끔 손끝을 다친다

 

이동가판대에서 계란 세 알을 산 그녀,
젖은 기침을 안개 같이 내뱉으며
낯선 손에 계란 봉지를 건네주고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 차가운 기억,
흩어진 퍼즐처럼 삐걱거리는 불안이 손끝을 타고 올랐다
끝내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밭은기침에도 흔들리던 가냘픈 어깨,
흐린 간판 밑 스산한 간이역에
헝클어진 마음만 두고 왔다

 

가끔 표를 사들고
시간 속에 찍힌 그 간이역으로 되돌아가면
기호 같은 나뭇가지가 스치는 차창
계란껍질과 빵 봉지 몇 개가 흩어질 때
눈꺼풀이 감기는 열차 안에 내가 앉아있었다

 

기억의 서랍장에 접힌 짧게 스쳐간 예감
그 간이역 간판 밑으로 자꾸 흩어지고 조립되는 순간들,

 

간이역이 나를 끌고간다
나 또한 간이역이었다

 


 

 

▲ 김인숙 시인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있다. 어쩌다보니 떠나와야 했던 공간도 있다.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란 대부분 한없이 제로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떠나버린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런 그리움이란 대부분의 시간을 철지난 열병마냥 피부 깊숙한 곳에서 잠복하며 지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은 조그만 자극에도 움찔거리며 표피 밖으로 튀어 오르기도 한다. 그것을 예측하고 회피할 방법은 없다. 언제나 당하고 나서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 꿈을 보길 원한다. 하지만 모든 여정이 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얗게 얼어버린 차창아래서 기대가 아닌 불안의 입김을 내불어야하는 순간도 존재한다. 어느 날 손을 베일 정도로 비정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며, 숨쉬기 힘들 정도로 쓸쓸했던 그 여정에서 마주쳤던 한 여인! 이동가판대에서 계란 세 알을 사서 낯선 손에 계란 봉지를 건네주고 말없이 자리를 떴던 그녀의 기억은 마치 잘게 부서지는 계란껍질처럼 무기질적이기까지 하다. 나 역시 스스로의 시간을 가둔 채 다른 여행자들의 고독을 세고 앉아있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기차표를 산다. 그리고 그때 그 낯선 여인을 추억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거울의 건너편에 앉아있는 듯 비현실적이었던 그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시간 속에 파문을 그린 후 열차에서 내렸다. 나는 변함없이 시트에 앉아있고 언제나 그렇듯 타인의 고독을 세고 있으며 어딘가에서 사그라들었을 시간의 파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여전히 어느 역에서 내려야할지, 언제 자리에서 일어서야할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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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5 [18:40]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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