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젠 오토밸리`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울산 시민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지난달 30일 울산시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경제자유구역 지정 신청서에 담긴 내용 가운데 등장하는 용어다. 이에 더해 `우리 동네 캐릭터`의 경우처럼 한글과 외래어가 합성된 경우는 이미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런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국제 조류에 뒤처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소위 `한글 도시`라는 곳에서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외래어를 그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없진 않다. 예컨대 `캐릭터`를 우리말로 전환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말로의 전환이 가능한데 그대로 전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R&D`는 연구개발로 바꾸면 된다.
`인프라`는 `기반 설비`로 표현해야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는다. `에코 시티`라고 하면 울산시민 절대 다수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 환경 도시`라는 알기 쉬운 용어를 두고 굳이 외래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글 순화에 앞장서야 할 행정기관과 방송매체들이 오히려 이를 역행하고 있으니 문제다.
한글날이 가까워지자 `한글 도시 울산`이란 상투어가 나돌고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라며 그를 기리는 행사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낯간지러운 일이다. 매해 이맘때마다 반복됐던 일이다.
그러다가 시간만 지나면 `인프라` `글로벌` `에코`란 말을 다시 사용하지 않았나. 다른 지역은 몰라도 최소한 `한글 도시`라고 자부하는 울산만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러고도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울산 출신임을 말할 수 있는가.
`한글 도시`라면 그에 걸 맞는 격식이필요하다. 한데 다른 도시보다 간판에 외래어는 오히려 더 많다. 그러면서 `글로벌`을 핑계로 삼는다. 세계로 나아가려면 기업이나 공공기관, 단체는 필수적으로 외래어를 사용해야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행정관서 서류에 외래어가 적잖이 섞여 있는 건 무엇 때문인가. 꼭 그런 외국어를 사용해야 행정이 세계적이고 돋보이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 개혁해 결과를 보여주는 개인, 단체, 사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독 문화ㆍ예술분야에서 외래어가 마치 모국어처럼 통용되는 현실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잘못을 뜯어 고치는 데 울산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서울시가 2012년 `한글 마루지 사업`을 시작했다. `마루지`는 `랜드 마크(land mark)`란 외래어를 순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부산에 가면 아시아 태평양 정상회담을 했던 곳으로 `누리 마루`란 곳이 있다. 누리 즉 `세상`에다 꼭대기를 뜻하는 `마루`를 합성한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말이 수두룩하거늘 자칭 `한글 도시`라는 울산은 태화강 십리대숲에 `에코 폴리스`란 돌비석을 세워 두고 있다. 때만 되면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이제 연중 울산의 모든 기관들이 외래어 대신 한글을 사용하도록 제도적 장치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