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명량(鳴梁)
 
장문석 시인   기사입력  2019/10/15 [15:44]

언젠가는 부닥치리라,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덜컥, 외통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야바위판 기웃거리다
우순풍조의 바닷길이 있다는
송학명월의 패에
판돈 전부 걸어 버릴까,
나침반 쪼여보던
기항(寄港)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덧
돛폭의 귀밑머리
하얗게 흩날리는
예순의 해협

 

수천수만의 물결이다
거칠고 빠른
숭어 떼의 외침이다
검푸른 어혈
돌아 나오는
울음의 소용돌이다

 

아직은 열두 척의 배
남아 있는가*

 

스스로에게 장계를 올리는
삶의 울돌목이다

 

눈 들면, 저기
펄럭이는 초요기(招搖旗)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 앞서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의 일부. `今臣戰船尙有十二`

 


 

 

▲ 장문석 시인    

덜컥, 마주친 예순의 해협. 비로소 나를 이끌고 온 조류가 참으로 거칠고 빠른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니, 일찌감치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기항지마다 패를 물리거나 바꾸고 싶었던 번민의 계절이 있었을 것이다. 더러는 요행을 꿈꾸며 야바위판 기웃거린 젊은 날도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런데 무엇이었을까? 나의 나침반 바늘을 항시 북극성에 고정시킨 것은. 수많은 암초에 갑판이 깨지고 사나운 폭풍우에 돛대가 부러지면서도 끝내 항해를 포기하지 않게 한 것은. 그것이 운명이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운명에 승복한다. 그 운명의 꼭짓점에 시(詩)가 있다는 질문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예순의 해협이다. 예순의 해협은 닻을 내리는 곳이 아니다. 다시금 돛폭을 기워보는 삶의 변곡점일 뿐이다. 아직은 내게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는 것이다. 저 멀리, 초요기가 나를 부르고 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9/10/15 [15:44]   ⓒ 울산광역매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https://www.lotteshopping.com/store/main?cstrCd=0015
울산공항 https://www.airport.co.kr/ulsan/
울산광역시 교육청 www.use.go.kr/
울산광역시 남구청 www.ulsannamgu.go.kr/
울산광역시 동구청 www.donggu.ulsan.kr/
울산광역시 북구청 www.bukgu.ulsan.kr/
울산광역시청 www.ulsan.go.kr
울산지방 경찰청 http://www.uspolice.go.kr/
울산해양경찰서 https://www.kcg.go.kr/ulsancgs/main.do
울주군청 www.ulju.ulsan.kr/
현대백화점 울산점 https://www.ehyundai.com/newPortal/DP/DP000000_V.do?branchCd=B00129000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