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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행복
 
유서희 수필가   기사입력  2019/10/22 [16:45]
▲ 유서희 수필가   

이게 몇 번 째 인가. 또 잃어 버렸다. 중학교 때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수업 시간에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아 초점을 모으느라 실눈을 하고 있으면 졸고 있는 학생으로 오인 받아 선생님께 지적당하기 일쑤엿다. 그 횟수가 늘어나자 급기야 집에서 울음보를 터트렸다. 하루는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밀양 읍내에 있는 안경점에 가셨다. 안경을 쓰고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안경을 쓰면 시집을 못 가는데 가시나가 안경을 썼다며 퉁명스럽게 쏘아 붙이셨다.

 

그 잔소리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는 안경 쓴 모습 마져도 눈에 가시처럼 여기셨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점점 주눅이 들어갔다. 안경을 쓰는 것이 죄인냥 여겨졌다. 안경을 쓰는 한 시집을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족쇄 같았던 안경을 벗기로 했다. 첫 월급을 타면 안경부터 벗으리라 마음먹었지만, 꿀떡같은 마음을 접고 부모님께 모두 드렸다. 두 번 째 월급을 받자 곧장 시내로 나가 콘택트렌즈를 꼈다. 고액이었으나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 그 가벼워짐이 날개깃에 비유가 될까. 하늘을 나는 기분이 그러했을까.

 

드디어 시집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가슴은 벅차오름으로 가득 찼다. 죄의 짐을 벗은 듯 가벼워졌다. 아직 비행기 탄 경험 외엔 하늘을 날아 본 적이 없기에 지금도 그 때의 순간만큼 자유로워져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렌즈는 이탈하기 일쑤였다. 돌출된 눈동자 탓이려니 생각했다. 하루는 눈에 이상이 생겨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눈동자 크기가 일반인들 보다 작다는 것이다. 거기다 오랜 세월 눈에 맞지 않는 렌즈를 끼다 보니 눈동자에 미세한 굴곡이 생겨 맞춤렌즈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동자 기형`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크기에 맞지 않던 렌즈가 자주 이탈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잠깐 다른데 신경을 쓰다가 부주의로 렌즈를 잃어버렸다. 병원에 가서 주문을 하고 도착하기까지 며칠간의 시간이 걸리는 동안 안경을 끼고 지내게 되었다. 착용하지 않던 안경을 계속 쓰자니 콧등이 짓눌려 머리와 귀의 뒤에 통증이 괴롭힌다. 안경을 벗어 통증을 몰아낸다.

 

마이너스 시력엔 모든 사물이 흐릿하다. 너무 잘 보여 상처 받는 현실을 벗어나는 느낌이다. 답답하기보다 오히려 아늑하고 평온해진다.  영상과 통신 발달로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세상이 두려워지고 사람의 길이 사라지는 것 같아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는 듯 마음이 무거워진다. 함께 어우러져 가는 길은 점점 잃어져 가고 자기만의 길을 고집한다.

 

`바르게 보기 안경원` 원장의 말이 인상적이다. "모든 고객들이 눈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바른 것만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객들이 방문하셨을 때 저 또한 바른 몸과 바른 마음가짐으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에 `바르게 보기`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이러해야 한다.

 

진실 되고 깊이 있게, 그리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 마음을 들여다보는 바른 자세다. 1인 미디어 세상이 불을 밝히고 있다. `나`만 돋보이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천천히,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욕심 없이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진다. 욕심에 눈을 밝히니 그것을 채우기 위해 험악하고 천륜을 저버리는 끔찍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질서가 무너지고 왜곡되어가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이 계절을 더욱 슬프게 한다.

 

차라리 시력이 어두워 뉴스도 영상도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더 평온할 지도 모를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 여기저기 정신없이 쫓아다니느라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다. 깊어 가는 가을에 나는 어떤 기도제목을 가져야 할까. 한 해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값진 시간이 될 수 있을까. 눈앞이 흐릿하니 사유가 깊어진다. 좋은 것만 볼 수 없지만 슬픔도 기쁨으로 볼 수 있는 긍정과 혜안慧眼을 가질 수 있기를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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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22 [16:45]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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