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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조문
 
노재순 시인   기사입력  2019/11/18 [16:46]

문명의 덫에 걸려버린 걸까
미끈미끈한 몸뚱어리로 벗어 놓은
민망하고 남루한 주검은
꿈틀 하지도 못하고 발끝에 밟힌다
그가 꿈꾸던 하늘은 어디였기에
불판 같은 보도블록 위에서
소신공양하듯이 미라가 되었을까

 

오늘은 개미들 잔칫날이다
아낌없는 몸 보시로 훌훌 비우고 떠났으니
그의 저승길 또한 환하겠다
가로등은 서둘러 조등을 밝히고 있다

 

다만 벼랑 끝 지푸라기 한 올 잡지 못하고
추락한 고독사가 아니었기를
의례적인 조상도 없이 스러지기엔
한 목숨 살아온 길 너무 섭하지 않겠는가

 


 

 

▲ 노재순 시인    

비 그치고 나면 보도블록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지렁이를 피하느라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지뢰밭을 지나듯이 살금살금 걷다가 비명도 지르곤 했는데 이제 나이 든 탓일까? 결국 사람이나 미물이나 한 세상 사는 목숨 주검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고독사에 대한 기사나 유품 정리하는 걸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뜨거웠던 생의 흔적 미처 정리도 못하고 불행하게 떠난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조문하고 싶다. 떠나는 마음 시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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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8 [16:46]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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