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성 이야기가 있는 인문학(이 인) 대표

1780년 정조4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맞아 조선에서는 사행단이 꾸려진다. 사행단의 정사는 영조가 가장 사랑했던 딸인 화평옹주의 부마인 박명원이 임명되고, 박명원은 자신의 8촌동생인 연암 박지원을 자신의 호위군관인 자재군관으로 함께 사행길에 오른다. 연암 박지원이 건륭제의 여름별장인 열하까지 사행단으로 다녀오며 기록한 일기를 작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작품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열하일기이다.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건넌 연암. 국경인 책문으로 들어서 마운령을 넘고, 청석령을 넘어 요양에 들어서는 순간 연암의 눈앞에는 그동안 본적도 없었던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다. 눈을 씻고 봐도 사방에 한 점 걸림 없는, 바다와 같은 드넖은 벌판. 연암은 혼자서 탁식을 내뱉는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는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터로구나!(好哭場)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함께 가던 상방의 비장 정 진사가 연암의 탄식을 듣고는 묻는다. "확트인 드넓은 요동벌판을 보고 별안간 통곡을 하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연암은 울음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말한다. "사람들이 슬플 때만 우는 줄 아는데, 기쁨, 노여움, 즐거움, 사랑함, 욕심과 근심 같은, 모든 감정이 지극하면 울음이 나는 것이오. 사람들이 이런 감정의 극치를 겪어 보지를 못하니 슬플 때만 우는 줄 아는 것일 뿐이지." 정 진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연암에게 묻는다. "요동벌판의 울음 터가 이렇게나 넓으니 선생과 함께 통곡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울음은 우리의 감정 중에서 어떤 감정의 극치에서 나오는 울음일까요?" 연암이 대답한다. "갓난아이를 보시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며 처음으로 내는 소리가 바로 울음이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 캄캄하고 갑갑하게 지내다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 손도 펴보고 발도 펴 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이때 아기는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울음이라는 참된 소리를 통해 펼치는 것이니.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 한바탕 울어볼만 하이!." 요동벌판을 눈앞에 두고 선 연암.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1천 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 있다. 광활한 벌판을 눈앞에 두고 연암은 한바탕 울어보려 한다. `천고의 영웅은 울기를 잘했고, 천하의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연암이 말했던 울음은 모든 감정의 끝에서 나오는 마지막 소리이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고 배운다. 심지어 남자는 평생 딱! 3번 운다고들 한다.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우리를 강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연암이 들었으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여러분. 이제부터 시원하게 한바탕 눈물을 쏟을 준비를 하자. 기쁨의 눈물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는가? 슬픔의 눈물뿐만 아니라 기쁨의 눈물도, 즐거움의 눈물도 큰소리 내어 울어보자. 한바탕의 시원한 눈물을 쏟고서야 우리 모두가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