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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리뷰(3)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초빙 연구원   기사입력  2019/11/26 [16:54]
▲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초빙 연구원   

신의 은총과 운명의 힘을 빌리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방법"은 물론 "짐승의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꼭 필요한 변화를 반드시 이루라는 것이다.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 나서라는 요청이 아닌 것은 마키아벨리적이지 않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선의를 앞세워 변명하고 주어진 상황을 탓하거나 알리바이 삼는 것만큼 마키아벨리가 경멸했던 태도는 없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늘 "악을 가리키는 정치 교사"로 비난받기도 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인간이 모두 선하다면 (자신이 권고하고 있는) 이런 계율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인간은 천사가 아니다. 천사를 데려와 정치를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을 빼앗기는 일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덧붙였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며, 위험은 감수하려 하지 않으면서 이익에는 밝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이들의 말만 믿고 다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는 군주는 파멸한다." 아마 이 정도에서 질겁하는 사람이라면 `군주론`의 더 잔혹한 표현을 감내하지 못할 것이다. `군주론`에 나오는 이런 주문은 어떨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 주든가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서까지 마키아벨리를 굳이 옹호하려 들 이유는 없다. 그가 정당화한 정치의 실천 방법 가운데는 분명 음모가나 파시스트 전체주의자들이 악용할 수 있는 것들로 수두룩하다. 실제로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도자 무솔리니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썼고 또 그를 신봉했다. 마키아벨리의 모든 것이 아니라 선별해서 수용하고 평가하는 지혜 또한 필요한 게 사실이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지극히 현실주의적 인간관과 그에 따른 실천적 권고나 조언이 당시로서는 달리 벗어날 수 없는 전통적인 정치관을 혁파하는 데는 큰 성공을 거두긴 했다.

 

그래서 이런 마키아벨리가 없었더라면 17세기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연 토머스 홉스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토머스 홉스는 마키아벨리를 이어받아 인간의 삶이란 "외롭고 궁핍하고 더럽고 냄새나고 심지어 짧기까지 하다"라고 말했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자유와 생명의 안전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모두가 절대적으로 복종할 공권력을 창출해야 한다며 "리바이어던"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근대 국가의 모습을 그려냈다.

 

주권의 절대성과 그에 대한 시민의 복종을 요청하는 자신을 비판하고 나선 도덕론자들을 향해서는 그들도 "밤에 문단속을 한다. 이웃을 신뢰한다면 이런 행동을 할까. 내가 말로 인간을 비난했다면 그들은 행동으로 인간을 비난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응수했다. 국가는 정당한 권력이기는 하나 본질은 폭력이 아닐 수 없다. 평화와 안전의 획득을 위해 실존하는 폭력과 강제를 공권력으로 통합해내고자 한 것, 마키아벨리로부터 시작된 지적 기획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에게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는 선택이 아니다. 그보다는 폭력의 선용 혹은 불가피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따라서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냐 견제 가능한 권력이냐", "자의적인 권력이냐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권력이냐"와 같은 현실주의적 질문은 전적으로 마키아벨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인간은 국가 없는 공동체나 무정부 상태보다는 사회 구성원이 적법하고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동의할 만한 정부를 만들어야 자유와 생명 그리고 노동의 결과로서 재산을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좋은 국가, 좋은 정부, 좋은 정치를 찾아 나서는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긴 이야기를 마쳐야 할 때인데 마키아벨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삶의 기쁨을 향유하기 전에 가난을 참아내는 방법부터 배워야 했다." 귀족이 아니라 가난한 서민 출신이라는 뜻이다. 29살에 늦은 공직을 시작했고, 그전까지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대학은 다녔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통치자보다 뛰어난 참모", "당대 최고의 문장가", "교황과 황제, 재상, 천재 예술가들도 그를 무시할 수 없었던 사람", "민중으로부터 사랑받았고 귀족으로부터는 늘 의심받았던 사람", "고문과 투옥으로 공직에서 쫓겨나 남은 삶을 강제된 저술가로 살아야 했던 사람"이 그를 나타내는 전부다.

 

그런 그가 나이가 들어 자신의 친구에게 남긴 편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오늘이나 내일 당장은 아닐지라도 우리 평생에 만나게 될 우리(이탈리아)의 몰락과 노예 상태를 생각하며 당신과 함께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에스파냐 그리고 독일(신성로마제국)에 의해 번갈아 약탈을 당했고 1830년대가 되어서야 이탈리아 통일운동은 시작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사망한 1527년 이후 300년이 지나서야 `군주론`의 요청이 현실로 추구된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의 운명이란 게 이렇듯 얄궂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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