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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정순연 수필가   기사입력  2019/12/02 [18:13]
▲ 정순연 수필가   

오늘도 그 할머니를 만났다. 순간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 십 여분 거리다. 할머니는 항상 강아지와 함께 운동을 다닌다. 가방에서 컵을 꺼내더니 주유소 한 귀퉁이에 있는 수돗물을 받아서 강아지에게 먹이고 있었다. 목이 말랐던지 혀를 날름거리면서 먹고 있었다. 컵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면 많은 시간을 걸어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머니는 강아지한테 지극정성이다. 할머니와 말을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 아파트 정문이나 후문에서 드나드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텃밭으로 오고 간다든지 외출을 할 때 길에서 가끔 만난다. 연세는 거의 아흔쯤으로 보이는데 허리는 많이 굽어있고 검버섯과 주름진 얼굴이?흘러간 세월의 흔적을 대변해 준다. 허리에는 어깨와 목 사이에서 두른 네모난 작은 가방이 불편한 듯 매달려 있다.


할머니는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 되면 헐렁한 칠부바지와 윗옷을 입고 다닌다. 오른손에는 항상 흰색의 가느다란 플라스틱 지팡이를 짚고 왼손에는 강아지 목에 매달은 줄을 잡고 있다. 강아지 종류는 모르지만 하얀 색깔에 털이 곱슬곱슬하다. 강아지는 빨강 색 바탕에 알록달록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다. 더운 여름에는 그 옷을 좀 입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항상 입혀서 다닌다.

 

할머니의 걸음은 매우 빨라서 강아지가 겨우 따라갈 정도다. 천천히 가면 줄을 옆으로 당기면서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한다. 그 연세에 어쩌면 저렇게 빠른 걸음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강아지가 가다가 생리를 해결할 때면 잠시 서서 기다려 준다. 할머니가 앉아서 쉬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건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한겨울에는 털모자에 목도리를 하고 거기에 마스크까지 착용하여 완전 무장을 해서 길을 간다. 두터운 털이 달린 윗도리를 입고 털신을 신고 있다.


나는 날씨가 추울 때는 집에만 있는 편인데 어쩌다 외출을 하게 될 때 가끔 할머니를 만난다. 비가 올 때도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아지 목 줄을 같이 잡고 다니는 정말 대단한 할머니다. 나도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건강하게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할머니는 2차선 도로에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동네를 걸어 다니고 인도가 있는 곳에는 인도로 다닌다.

 

몇 시간을 걷는지 따라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여기서도 만나고 저기서도 만난다. 그 할머니를 마주칠 때마다 아직도 운동을 다니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나를 자각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저렇게 연세 많은 할머니는 거의 매일 운동을 하는데, 나는 모든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마음만 먹고 있지 실천에 쉬 옮겨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할머니의 성실함과 인내심을 본받고 싶어진다.


하루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걸음인 것 같았다. 아파트 정문 앞 모퉁이에 펼쳐놓은 채소가게에서 무를 한 개 구입하는 것을 보았다. 꽃무늬가 있는 헝겊으로 만든 옛날에 할머니들이 많이 썼던 작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할머니가 살림을 사는 모양이다.

 

그 연세에 자식들이 해 주는 밥이 아니라 손수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은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삶을 동행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할머니와 강아지는 언제 어떻게 만나서 얼마나 같이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강아지는 할머니의 아름다운 반려자로 보였다.   강아지를 먹이고 씻기는 일은 동행의 의무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단지 외로움을 달래주는 상대자가 아니라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상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할머니와 강아지가 건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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