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말소리를 완전하고도 쉽게 적기 위해 세종대왕에 의해 고안된 훈민정음 28자 체계는 우리 국어의 영원한 지침이자 표준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어리석은 이라도 10일이면 깨우칠 수 있다고 밝힌 그 쉬운 훈민정음이 지금 학생들에겐 어렵단다. 연산군의 탄압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이 오랫동안 그 종적을 감춘 상태에서, 일제강점기시 훈민정음이 네 글자가 빠지고 몇 군데가 비틀리는 등 손상됐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지금의 한글체계를 마련, 교육해줬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하고 있다.
고1 학생의 기말고사 대비 국어과목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훈민정음 해례본, 언해본, 용비어천가 등 세종 때의 서적들에 나오는 내용을 포함한 중세국어가 주요 시험범위다. 세종대왕이 쓴 적도 없는 `어두자음군`이라는 어려운 말이 나온다. 복수를 나타내는 `群(무리 군)`자를 쓰는 `어두자음군(語頭子音群)`은 어두에 쓰이는 `ㅺ, ㅄ, ㅵ` 같은 2~3개자로 된 초성 무리를 말한다. 그 자료를 보면, 어두자음군을 세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ㅺ, ㅼ, ㅽ`의 된시옷 계열 된소리인데, 지금 학교에선 "된소리로 추정"되는 글자들이라고 가르친다. 된소리가 분명한데 `추정`이라니.
살아생전 훈민정음 해례본을 본 적이 없는 주시경의 영향으로 일제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1930)에서 우리말 된소리가 `ㄲ, ㄸ, ㅃ`으로 왜곡된 후, 지금껏 바로잡히지 못한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2019년 7월 9일자 `훈민정음의 흑역사, 된소리(ㅺ)와 긴소리(ㄲ)`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 다음, 된비읍을 맨 앞에 써서 역시 된소리를 나타내는 `ㅄ, ㅳ`과, 된소리 장음인 `ㅴ, ㅵ`를 `된소리로 추정`도 아니고 `어두자음군`이라고 학생이 받아쓰기해놓은 걸 보고 기함한다. 한 마디로, 상부기관의 지침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조차도 그 실체를 잘 모른다는 얘기다. 어두자음군의 세 종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내막을 좀 더 살펴보자.
국립국어원에 2017년 9월14일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중세 국어의 어두자음군에 대해서 질문하려고 합니다. 위의 글자들은 [브듣], [브살], [브꿀]로 읽는 것이 맞는지요? 그리고 어두 자음군 `ㅳ`라고 할 때 `브드`라고 읽어야 하나요? 아니면 `비읍디귿`이라고 읽어야 하나요?"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문의하신 바와 관련하여서 `ㅂ` 계열은 15세기에 중자음으로 두 소리로 발음되었으나, 16세기에 된소리로 발음되었고, `ㅄ` 계열은 된소리와 이중 발음으로 실현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비읍 디귿`은 자모의 이름이고, 발음이라면 [브 드]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ㅳ`은 `ㄷ`의 된소리지 [브드]가 결코 아니다. 위 답변은 훈민정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주시경의 오해 "각자병서 ㄲ, ㄸ이 된소리다"를 사수하려는 데서 비롯된 오답이다. 우리말에선 세종 때나 지금이나 2개자 또는 3개자 초성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중성과 합하여 1음절이 되었으면 하나의 음인 것이지 두 소리로 발음되는 법은 절대 없다. 우리말엔 된소리에도 장음이 있었다.
훈민정음해례 21장에 나오는 3자 병서 ㅴ, ㅵ은 ㄱ과 ㄷ의 `된소리 장음`이다. `이때`와 `저때`에 종성 `ㅂ`이 붙어 변한 말인 `입때`와 `접때`는 된소리 `ㅼㅐ[때]`의 장음인 `ㅵㅐ(時)`가 어원이다. 하지만 분리되기 전 `ㅵ`에서의 `ㅂ`은 된소리부호 허사일 뿐이지 그 뒤의 `ㅼ`과 별개로 `브`로 발음되지 않는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ㅵㅐ`는 [브때]의 이중발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식의 현 교육지침은 우리 국어를 오도하는 것으로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
